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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강 이강년 의병대장' 순국 110주년기념 학술대회


13년 동안의 의병투쟁 역사 남기고 순국, "3.1운동 정신으로 이어져"

[아이뉴스24 조민성 기자]한말 의병대장 운강 이강년 선생은 경성감옥에서 재판을 받고 상고를 하지 않고 순국하는 소회를 시로 남겼다. "한평생 이 목숨 아껴본 바 없거늘 / 죽음을 앞둔 지금 삶을 어찌 구하랴마는 / 왜적을 쳐부술 길 다시 찾기 어렵구나./ 이 몸 비록 간다한들 얼마저 사라질까?"

(사)운강이강년선생기념사업회(회장직무대행 이순규)와 (사)운강순국11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공동위원장 고영조·현한근)는 '고종황제와 한말의병, 운강이강년'을 주제로 운강이강년선생 순국110주년을 기념하는 학술대회를 19일 서울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가졌다.

이강년 의병대장(1858년~1908년)은 한말인 1896년 부터 13년 간 국내 의병투쟁 역사를 남기고, 1908년 일제에 의해 신축된 경성감옥(지금의 서대문형무소)에서 최초로 순국했다.

이날 이순규 기념사업회 회장직무대형은 대회사에서 "운강 이강년 의병대장의 증손으로서 순국 11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의 대미를 학술대회로 장식하게 됐다"며 "운강 의병대장의 13년에 걸친 의병항쟁과 순국이 역사적으로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 인식을 새로이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또 축사에 나선 채홍호 대통령직속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기념사업추진기획단장은 "민중이 스스로 일어난 의병 역사의 의기가 독립을 이루고 전쟁의 폐허 위에서도 세계 10위 경제대국 도약의 밑거름이 되었다"면서, "운강 의병대장의 독립투쟁의 횃불은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이어졌으며, 이러한 의병정신을 국가가 기념하고 보답해 그 숭고한 뜻을 기려야 한다"고 의미를 전했다.

학술대회 제1주제는 김종욱 동국대학교 교수가 '고종의 거의밀지(擧義密旨)와 국민전쟁: 대한제국 국군에서 대한민국 국군까지'로 발표했다.

1894년 '갑오왜란'부터 1945년 해방까지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대한민국'으로 나아간 파란만장한 항일전쟁 과정에서 고종의 역할은 어떠했는지, 한말 의병과 고종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제2주제는 오영섭 연세대학교 교수가 '고종황제와 이강년 의병장'의 주제로 발표했다.

러일전쟁 이후 고종황제와 그 측근 대신들은 국권수호운동의 일환으로서 밀사들을 재야로 보내 재야세력과 연대관계를 맺고 의병운동을 벌이게 했다. 이때 재야의 우국지사들도 대한제국과 고종황제를 위해 대거 봉기해 의병운동을 전개했다. 오영섭교수는 이번 연구에서 고종의 최측근인 심상훈과 이강년 의병장이 국가와 황제를 구하고자 의병을 일으켜 항일전을 수행한 과정을 설명했다. 중앙에서의 국권수호회교 및 고종파천운동과 지방에서의 항일의병운동은 고종의 항일전략의 중핵을 이루고 있다고 덧붙였다.

제3주제는 이태룡 (사)의병정신선양중앙회 의병연구소장은 '운강 이강년의 도체찰사 제수와 순국과정연구'로 발표했다.

운강 선생이 1907년 대한제국 황제로부터 도체찰사 제수를 하였고, 호서창의대장으로서 13도 창의대진에 참여한 과정과 1908년 순국과정을 실증적으로 발표했다, 고종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극단에 위치해 있다. '망국의 군주'라는 평가와,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흥행 이후 그래도 일제에 맞서 '결연히 싸운 군주'라는 평가가 공존하고 있다. 어느 것이 진실이든 이런 극단적 평가를 받는 국왕도 드물 것이며, 고종에 대한 비난은 역사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가져온 결과이다고 분석했다.

한편, 정부는 이강년 의병대장에게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아울러 장남 이승재 선생 '건국훈장 애국장', 차남 이긍재 선생과 삼남 이명재 선생 '건국훈장 애족장', 사촌동생 이강수 선생 '건국훈장 애국장' 등 가족 대부분에 포장이 수여됐다.

조민성기자 mcho@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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