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회 BIFF]성평등 문화 위한 '리틀 포레스트'의 실험

임순례 감독 "표준계약서 실천·조합 행동에 더해 법적 제재도 필요"


[조이뉴스24 권혜림 기자] 임순례 감독이 영화 산업 현장의 성평등 문화 구축을 위한 방안들을 제시했다. 최근작 '리틀 포레스트'의 현장에서 이를 위한 생활 수칙을 공지하기도 했던 감독은 성폭력 예방 교육을 비롯해 단위별 조합의 적극적 행동, 표준계약서 실천 등을 통해 분위기를 개선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9일 부산 해운대 동서대학교 센텀캠퍼스에서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과 영화진흥위원회가 함께 주최하는 '한국영화 성평등 정책포럼'이 진행됐다. 1부 행사 '성평등한 영화 현장 만들기-든든한 토크'에는 임순례 영화감독과 여미정 프로듀서, 한유림 한국영화성평등센터 전문위원이 참석했다.

문화예술계 성폭력 고발 운동 '미투(Me Too)' 운동이 촉발되며 한국 영화 산업 현장에서도 본격적으로 성평등 의식 제고가 이뤄지고 있다.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남쪽으로 튀어' '제보자' '리틀 포레스트' 등을 연출한 임순례 감독은 충무로 여성 감독으로 성평등 문화를 구축하는 데 앞장서왔다.

이날 감독은 영화계 내 성 불평등 문화에 대한 업계 외부의 시각과 내부 현실의 차이를 알리는 한편, 타 산업과 비교해 영화 산업 현장이 성폭력과 성희롱 등 성범죄 발생에 취약할 수 있는 이유를 설명했다.

임순례 감독은 "보도들을 통해 영화계가 유독 성폭력, 성희롱이 만연한 집단이라 오해하는 분들이 많지만 실제적으로는 타 분야보다 (성범죄가) 오히려 많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며 "한 가지 미리 말하고 싶은 건 이런 문제에 대해 더 첨예하게 인식, 개선 노력도 가장 적극적으로 하려는 공동체가 영화계라는 것"이라고 알렸다.

그러면서도 "이런 일들이 빈번히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인 것은 맞다. 다른 분야보다는 인간관계 강화를 위한 측면에서 술자리, 업무 이후의 친교, 개인적 접촉이 많고 지방 숙소 생활 기간도 많은 편이기 때문"이라며 "가벼운 농담이 용인되는 분위기, 그래서 어디까지가 희롱인지가 모호하게 작동되는 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영화계 성폭력 신고율이 낮은 이유에 대해선 좁은 커뮤니티, 가해자에 이입한 시각으로 신고자를 비난하는 분위기, 프리랜서가 다수인 고용 형태 등을 꼽았다. 임 감독은 "신고율이 낮은 특수성은 영화계 커뮤니티가 너무 좁다는 데서 나온다"며 "영화계에선 어떤 현장에서 어느 일이 있었는지 그 다음날이 되면 영화계 내부가 다 알 수 있고 다음 작품을 할 때도 영향을 미친다. 꼭 성에 대한 부분 뿐 아니라 일을 잘 했는지 아닌지 등 사람들의 직접적 평가가 굉장히 중요한 업계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한 "너무 좁은 커뮤니티이기 때문에 피해 사실을 공론화하는 경우, 가해자가 가정의 가장이었다거나 경력이 단절되는 경우 신고한 사람을 '한 사람의 인생을 파멸시킨 가해자'로 도리어 변환되는 면도 있다"며 "일반적 사업장이었다면 고용주가 특별한 전권을 가지고 그 사람을 해고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대부분 영화 스태프들은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그런 사건을 저질렀을 때 강하게 가해자를 제지할 법적 주체가 없다. (낮은 신고율의 배경에는) 이런 특수성이 있다"고 밝혔다.

성범죄 발생을 막기 위한 조항이 삽입된 표준계약서를 사용하거나 업무 단위별 조합의 차원에서 가해자를 제재하는 방안은 이런 상황에서 영화계의 성평등 문화를 구축할 수 있는 방법이다.

임 감독은 "영화계 뿐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이런 문제에 대해 관련법이 제정, 개정되고 있다"며 "영화계 표준계약서 안에는 성적으로 문제시되는 행동을 할 시 바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 사법적 강제 규정은 아니지만 일하는 사람에게 계약 파기 사유는 굉장히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거의 모든 현장에서 표준계약서를 실천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알렸다.

또한 "스태프들은 단위별로 거의 조합에 가입돼 있다"며 "감독조합도 성적으로 문제가 되는 행위를 한 회원에게 제명 등 제재 조치를 취한다. 그런 것도 실제적으로 큰 압박과 압력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각 단체 유니온들의 실무자들이 이런 것들에 대해 아주 적확하게 적극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상황 개선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제도적, 법적인 제재일 것"이라고 말했다.

임순례 감독은 최근작 '리틀 포레스트'의 현장에서 성평등 문화를 위한 촬영장 내 생활 수칙을 만들어 게시하기도 했다. 그는 "촬영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고사 현장에서 길지 않은 시간이라도 성평등 문화를 위한 수칙을 설명하는 일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답했다.

임 감독의 경우 '리틀 포레스트'의 스토리보드에 촬영장 내 생활 수칙 10가지를 함께 담아 전 스태프가 이같은 조항을 함께 염두할 수 있게 했다. 여기에는 스크립터로 참여한 영화 '걷기왕'에서 국내 영화 현장에서는 처음으로 성폭력 예방 교육을 마련한 남순아 감독의 영향이 있었다고도 밝혔다.

다음은 임순례 감독이 공개한 '리틀 포레스트' 촬영장 내 생활 수칙이다.

▲성희롱과 친밀감을 구분한다 ▲성차별적 농담, 음담패설을 삼간다 ▲성희롱으로 인한 불쾌한 감정은 분명히 표현한다 ▲상대방의 싫다는 표현에 대해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동료의 사생활에 관한 루머를 퍼뜨리지 않는다 ▲고정된 성역할과 나이를 강조하는 말은 하지 않는다 ▲동료의 신체에 대한 성적인 평가나 비유를 하지 않는다 ▲불필요한 신체접촉을 삼가며 회식 때 음주나 술시중을 강요하지 않는다 ▲공적인 업무 이야기는 숙소 등 밀폐된 장소가 아닌 공적인 장소에서 한다 ▲주위에 피해자가 있을 때는 적극적으로 도와준다.

한편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은 영화산업 내 성평등 환경 조성을 목적으로 지난 3월 공식 개소했다. 여성영화인모임이 운영하고 영화진흥위원회가 지원하는 단체다. '든든'은 영화산업 내 성희롱·성폭력 예방 교육 및 피해자 지원을 비롯해 실태조사 및 정책 제안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부산=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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