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회 BIFF]차이밍량 "묵묵히 나의 길을 간다"(인터뷰)

"상업영화 위주의 산업 발전, 관객에게도 불리해"


[조이뉴스24 권혜림 기자] 대만의 거장 감독 차이밍량이 신작 영화 '너의 얼굴'로 부산 관객을 만나고 있다. 다양한 실험을 통해 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험하고 있는 그와 대만과 한국 영화산업의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감독은 예술영화의 생존 및 가치의 확장을 위해 또 다른 길을 모색 중이다.

8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 영화의 창' 부문 공식 초청작 '너의 얼굴'(감독 차이밍량)의 차이밍량 감독과 배우 이강생의 라운드 인터뷰가 진행됐다.

차이밍량은 허우샤오시엔과 함께 대만 예술영화계의 거장으로 불리는 감독이다. 1994년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애정만세'를 비롯해 '하류'(1997), '안녕, 용문객잔'(2003), '떠돌이 개'(2013) 등이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자주 관객을 만나 온 차이밍량 감독은 베니스에서 먼저 선보인 신작 영화 '너의 얼굴'로 다시 부산을 찾았다.

이날 인터뷰에서 그는 대만을 비롯해 한국에서도 예술영화 시장이 점차 위태로워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냈다. 베니스에서 최고상을 수상한 대표작 '애정만세'를 제작하던 당시와 20여년 뒤인 현재 대만 영화 산업의 상황을 비교해 달라는 질문에 감독은 "모든 시대마다, 또 감독마다 다르게 볼 수 있는 일이라 조심스럽다"며 입을 열었다.

그는 "내가 영화를 시작한 시기는 1990년대 초였고, 당시는 대만 영화시장이 가장 침체기를 겪고 있던 때였다"며 "허우샤오시엔 감독이 등장하기 전 대만에서는 1년에 약 300편의 영화가 제작됐지만 대체로 일률적이고 단편적인 상업영화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오히려 '무엇을 찍어야 성공할 수 있을지 몰랐던'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보다 자유로운 작업들이 가능했고, 허우샤오시엔 같은 감독 역시 나올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대만 영화계의 뉴웨이브 경향과 세계적 예술 영화인으로 손꼽히는 허우샤오시엔의 활약은 대만의 예술 영화들을 세계 시장에 소개하는 역할을 했다. 이들 세대의 작품이 기존의 천편일률적 영화 시장에 환기작용을 하면서, 보다 개인적인 성격의 이야기에 주목하고 감각적 이미지를 포착하는 이후 세대 감독들 역시 등장하게 됐다. 허우샤오시엔의 등장 후 약 10여년 뒤 데뷔한 차이밍량 역시 그들 중 한 명이다.

차이밍량 감독은 "데뷔 당시 나는 굉장히 개인적인 영화들을 찍었는데, 당시엔 대만 영화계가 시장의 성공을 이룰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 '예술영화 뿐 아니라 상업영화도 찍어야 한다'는 비판적 시각도 있었다"며 "지금 대만 영화계에선 감독이 능동적으로 상업영화를 찍으려는 경우도 많다. 그 두 분류의 영화들이 갈등 구조 아래 놓여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소개되는 대만 영화들이 줄어든다는 점은 딜레마"라고 설명했다.

차기작 영화 계획을 묻는 질문엔 "장편 영화를 계획 중"이라고 알렸다. 자신의 작업이 극장에서 상영되는 것과 다른 종류의 미디어아트이거나 대중적으로 큰 관심을 얻기 어려울 뿐, 영화 동지인 이강생과 함께 끊임없이 예술 작업을 해 왔다는 것이 감독의 이야기다. 실제로 그의 다음 프로젝트는 미술관에 자신의 영화를 전시하는 작업이다. 그러면서도 감독은 한국에서 자신의 영화를 만나는 것이 쉽지 않은 이유는 상업 영화 중심의 시장 및 관객들의 선택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2010년 부산에서 아시아영화인상을 받았는데, 그때 영화 잡지 기자가 '예전엔 차이밍량 감독의 영화가 극장에서도 사랑을 받았는데, 왜 이제 영화제에서만 볼 수 있나'고 계속 물었다"며 "그건 내 문제가 아닌 시장의 문제였다"고 답했다. 이어 "故김지석 부산국제영화제 수석프로그래머가 있을 때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내 모든 작품을 소개했지만 그것은 시장의 개척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덧붙였다.

여전히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각광받고 있는 감독임에도 그의 영화를 한국 극장가에서 만나는 일이 쉽지 않아진 것이 사실이다. 그 배경을 언급하며 상업성에 지나치게 치우친 한국 영화 산업의 현실을 빼놓을 수 없다. 감독은 "시장에 영향을 주는 요소들은 많지만, 이것이 상업영화 위주로 발전되는 면이 있다"며 "그런 방향은 오히려 영화의 발전 가능성을 좁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관객에게도 불리한 일"이라고 답했다. 또한 "나는 내 작품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기다려주지 않는다"며 "나는 내 길을 묵묵히 갈 것이고, 나를 아껴주는 분들이 있다면 함께 가면 될 뿐"이라고 알렸다.

그의 신작 영화 '너의 얼굴'은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영화 사이의 독특한 실험을 전개하는 작품이다. 감독의 페르소나인 배우 이강생, 그리고 비연기자인 출연자 12명까지 총 13명의 얼굴을 비춘다. 사람의 얼굴을 소재로 한 이번 작업의 배경 역시 직접 들을 수 있었다. 감독은 "영화라는 매체는 다른 예술에 없는 여러 표현 방식을 통해 특별하게 여겨지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클로즈업, 혹은 딥 클로즈업"이라고 설명했다.

자신의 경험을 돌이키며 여러 영화의 클로즈업 장면들을 오래도록 뇌리에 담아두었던 일을 언급한 감독은 "영화 내용이 뭔지 잊기는 쉽지만 딥 클로즈업 장면은 뇌리에 선명히 남는다"며 "우리가 인생을 살며 상대방의 얼굴을 자세히 보면서 이야기하는 경우가 드물다. 특히 우리에게 익숙한 사람일수록 그렇더라. 내 어머니의 얼굴을 가장 열심히 바라본 때는 어머니의 임종 직전 30분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감독은 "인생에서 누군가의 얼굴을 그렇게 열심히 보는 것은 두 가지 순간 같다. 하나는 부모가 갓 태어난 아이의 얼굴을 보는 순간, 또 하나는 아이가 첫 걸음마를 뗐을 때"라며 "너무 사랑해 한 순간도 놓치기 싫어 응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존 영화들이 정보의 전달을 위해 클로즈업 기법을 사용했던 것과 달리, '너의 얼굴'은 그저 타인의 얼굴을 응시하는 경험 자체로 메시지를 남긴다. 감독은 "일반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얼굴을 자세히 보는 일은 보통 영화관에서나 있는 일"이라며 "지금의 많은 영화들은 드라마를 중시하기 때문에 (클로즈업을 통해) 많은 정보를 주는 일에 집중하고, 보는 것 자체엔 소홀한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내 영화는 이제까지도 그랬듯이 템포가 느리다"며 "트렌드와는 다른 방향으로 가면서 영화에 또 다른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는 오는 13일까지 부산시 일대에서 열린다.

부산=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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