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경 시인, 암투병 끝 향년 54세로 별세···독일 뮌스터서 수목장


[아이뉴스24 전종호 기자] 재독시인 허수경(54)씨가 암 투병 중 3일(한국시간) 별세했다.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등을 통해 외로움과 상처를 노래한 시인이다. 27년째 이국인 독일의 삶 속에서 모국어로 시를 쓰며, 시간의 지층을 탐사하는 고고학적 상상력과 비옥한 여성성의 언어를 보여줬다는 평을 들었다.

경남 진주 출신인 고인은 경상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상경해 방송사 스크립터 등으로 일했다. 1987년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하면서 시인 활동을 시작했다.

[출처=문학과지성사 제공]

이듬해 펴낸 첫 시집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는 문단에 큰 충격을 안겼다. 역사의식과 시대감각을 녹여넣은 민중의 삶을 주저 없이 펼쳐낸 과감함 때문이다. 우리말의 독특한 가락을 살려낸다는 평도 받았다.

1992년 독일로 갔다. 뮌스터대학에서 고대근동고고학을 공부하며 박사학위를 받았다. 독일인 지도교수와 결혼했다. 이후 종종 한국을 찾았지만 현지에 터전을 잡았다. 그러나 모국어로 시집, 산문집, 장편소설 등을 꾸준히 펴냈다.

특히 2001년 세번째 시집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는 한국과 독일의 경계, 고고학에 기반한 도시의 폐허를 바라보는 시선, 모국어를 향한 진득한 그리움 등을 뭉쳐 영혼을 노래한 역작으로 통한다.

2012년 발간한 다섯 번째 시집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으로 고고학적인 세계와 국제적 시야를 바탕으로 깊어진 사유를 증명했다.

시인인 김민정(42) 난다 대표를 통해 말기암 투병 사실이 알려졌다. 하지만 고인은 문병 등을 정중하게 거절하고 조용히 자신의 언어를 정리해왔다. 2003년 펴낸 에세이집 '길모퉁이의 중국식당'을 새로 편집한 '그대는 할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를 최근 펴냈다.

싱어송라이터 한희정(39)이 그녀의 작품에 멜로디를 붙인 '바다가'를 발표하는 등 대중문화 예술인들 사이에서도 지지를 얻었다.

시집 '혼자 가는 먼 집'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산문집 '모래도시를 찾아서' '너 없이 걸었다', 장편소설 '박하' 등도 냈다. 동서문학상(2001), 전숙희문학상(2016), 이육사문학상(2018)을 수상했다.

고인은 뮌스터에서 영면한다. 고인의 시집을 출판해온 문학과지성사는 "30년 가까이 함께했던 그곳 가족 이웃이 지켜보는 가운데 수목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라고 전했다.

전종호기자 jjh18@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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