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일의 릴레이인터뷰]박혁진 리눅스코리아사장

 


안녕하세요, 김광일의 릴레이인터뷰 코너입니다.

씨네티아정보통신 성낙출 사장의 벤처창업이야기는 CEO의 역할과 사업을 시작할때의 초심에 대해 다시한번 그 의미를 생각케한 인터뷰였습니다.

성사장이 바통을 넘긴 85번째 릴레이인터뷰의 주인공은 리눅스코리아의 박혁진 사장입니다. "CEO의 덕목을 고루 갖춘 분입니다. 합리적인 사고와 정확한 판단으로 균형감각이 뛰어난 CEO죠. 튀지 않으면서도 중도를 지킬줄 아는 경영자입니다." 성사장의 박사장에 대한 추천의 말입니다.

두 사람은 벤처무대에 뛰어든후 알게된 사업 선후배라고 합니다.워낙 잘 통해 이젠 특별히 말을 하지않아도 상대방의 의중을 알 정도가 됐다고 하네요.

리눅스코리아 박혁진 사장의 균형잡힌 경영자 마인드가 어떤 것인지,그의 경영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최근 몇년간 천당과 지옥을 오간 벤처업계엔 숱한 부침의 우여곡절과 기막힌 스토리들이 즐비하다. 실패후 참담하게 망가진 창업자, 상상을 초월하는 빚더미에 올라 앉은 CEO, 기막힌 타이밍으로 단숨에 거부가 된 사람, 그리고 재기를 위해 몸부림치는 CEO…..

리눅스코리아 박혁진(41) 사장은 리눅스업계의 부침을 가장 극명하게 몸으로 겪은 대표적CEO다. 리눅스업계의 명암을 함께한 산증인이다.

리눅스 비즈니스도 돈버는 수익사업모델이 될수 있음을 처음으로 증명해낸 리눅스업계 1세대 기업가이기도 하다. 그동안 국내 리눅스업체들은 리눅스하면 공짜라는 PC이용자들의 인식땜에 사업성을 확보하는데 실패, 중도탈락한 업체가 부지기수다.

숱한 시행착오끝에 최근 안정된 사업포트폴리오를 구축하며 탄탄한 수익기반을 확보한 리눅스코리아는 그래서 요즘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다. 양재동 리눅스코리아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박사장은 매우 예의바른 CEO다. 스스로 몸을 낮추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스타일이다. 아마도 물건파는 ‘영업’이 몸에 벤 탓인 듯하다. 우선 넘치는 자신감이 눈길을 끈다.

실제 박사장은 벤처 무대에 뛰어든 이래 생사의 갈림길에서 숱하게 흥망성쇠를 맛본 탓인지, 이젠 웬만한 어려움과 고통에는 눈도 깜짝하지 않는다. 산전수전 다겪은 7년차 CEO답게 노련한 경영노하우와 배짱이 묻어난다.

살벌한 구조조정으로 회사의 절반을 짤라내는 악역도, 그리고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개속에서 무작정 밀어부쳐 지금껏 버틴 완력 등 저간의 역사로 다져진 맷집좋은 모습이다.

박 사장은 차분하고 예의바른 외모와는 달리 사업비전을 쏟아내는 눈빛은 아주 강렬하다. 스스로 배수진을 친 탓인지, 늘 긍정적이고 희망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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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눅스코리아 회사 소개서
리눅스코리아는 ISP나 통신서비스회사에 들어가는 각종 제어용 솔루션을 개발하는 리눅스전문 벤처기업. 올핸 30억원대의 매출에 5억원 규모의 순익을 확신하는 리눅스업계의 유망주다.

◆ 리눅스에 빠진 재료공학도

"e메일이라고 하는 건데요, 무지 편합니다. 2500명 전직원에게 메일계정을 줄수 있습니다."

지난 97년, e메일이 제대로 보급되지 않던 당시, 박혁진은 부서장을 붙잡고 통사정을 하고 있었다. 결국 허락을 받아낸 박혁진은 밤낮없이 개발에 매달린 끝에 회사내 놀고있던 서버 한 대를 가지고, 전직원들에게 전자메일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성공했다. 직원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다들 신기해하는 눈치였다.

박혁진은 평범한 샐러리맨이었다. 재료공학을 전공한 그는 89년, 당시 재계 5위인 쌍용그룹 계열사인 쌍용양회에 입사,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다. 시멘트를 생산하는 쌍용양회는 그 시절, 재료공학도들에겐 꽤나 인기있는 회사였다.

대전에 있는 대덕연구소에서 93년까지 5년여 연구기획업무를 맡았다. 박혁진의 인생항로는 당시 파인세라믹이라는 신소재 열풍이 불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요동치기 시작한다.

회사는 파인세라믹사업에 승부를 걸겠다며 제2연구소까지 건립했다. 하지만 그룹이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신규 프로젝트는 용두사미로 끝나고 만다.

제2연구소로 옮겼던 박혁진은 갑자기 할 일이 없어졌다. 다행히 97년말,본사 전산부서로 발령이 났다. 놀라운 것은 회사의 사업축소로 이리저리 내몰린 박혁진은 오히려 이 때부터 엄청난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전공을 제대로 찾은 것인가? 전산업무를 시작하면서 박혁진은 그야말로 일에 푹 파묻히는 놀라운 열정을 보인다. 실제 박혁진은 전산관련 업무를 하면서 훗날 벤처사업에 필요한 것들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착착 준비하고 있었다.

전산실로 옮긴 97년말, 그는 전산실내 70여명 직원들간의 커뮤니케이션 툴조차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리눅스기반 BBS를 개발, 직원들에게 제공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직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너무나 좋아했던 것. 당시로선 흔치않은 리눅스기반으로 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번의 오류도 없이 잘도 돌아갔다. 이어 서버 한 대로 2500명 전직원에게 e메일을 제공, 또한번 주위를 놀라게 했던 것.

리눅스마니아로 변해버린 박혁진은 이미 재료개발 엔지니어가 아닌 전산전문가로 서서히 능력을 발휘하며 숨어있던 자신의 잠재력을 서서히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박혁진, 그는 누구인가
64년,인천생. 서울대 재료공학과졸업. 쌍용양회 연구소, 전산실출신으로 리눅스 마니아. 뛰어난 논리력과 폭넓은 식견의 소유자.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에 강한 추진력이 강점. 두주불사형으로 친화력이 뛰어나다는게 주위의 평.
취 미바둑(아마 2급), 만화광
소주 1병(담배는 하루 한갑)
운동특별히 없다.
존경하는 CEO특별히 없다.
친한 IT맨이현규 아이클로스텍 사장, 홍성각 넷크루즈 사장, 홍승억 MMC테크놀로지 사장
10년후 모습벤처기업을 계속 경영하고 있을 것이다. 괴롭지만 재미있기 때문이다.

◆ 운명의 만남

“형,제발 사업같이 해요. 형이 도와주지 않으면 회사문 닫아야될지 몰라요. 우리가 영업을 아나요?”

99년초,박혁진은 평소 잘 알고지내던 후배인 한동훈(전 리눅스코리아사장)의 간곡한 요청을 받고 곤혹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96년초, 박혁진은 당시 하이텔 리눅스 동호회 시숍인 한동훈을 운명적으로 만난다. 대구에서 가진 리눅스동호회 번개모임에서 조우를 한 것. 당시 밤낮없이 컴퓨터에 매달려있던 박혁진은 하이텔 리눅스동호회에 가입, 열심히 리눅스를 섭렵하고 있었다.

한동훈,이만용,김성우 등 당시 각 PC통신 리눅스동호회를 주도했던 이들은 98년 리눅스코리아를 설립,사업에 나선다. 절친한 리눅스 동호회 선후배들은 그렇게 의기투합했다.

99년 1월 한동훈의 스카우트제의를 받던 당시 리눅스코리아는 고작 직원 13명에 불과한 신생회사였다. 회사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고, 대우 역시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벤처를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에 박혁진은 그 해 여름, 합류를 결정했다. 99년 당시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사회전체를 휘감고있을 때였다. 극구반대하는 아내와는 두달여간 신경전을 벌였다.

밤낮없이 컴퓨터를 지키는 남편에 늘 불만이던 아내는 ‘리눅스’란 말만 나와도 과민반응을 보일만큼 싫어했다. 99년 8월,박혁진은 리눅스코리아에 합류,벤처무대에 데뷔한다.

오랫동안 대기업의 잘짜여진 틀속에서 생활해온 그에게 동아리같은 벤처분위기에 적응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처음에 정말 황당하더라구요.맨날 출근하면 사무실에서 자고있는 직원들 깨우는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박혁진이 합류한 이후 리눅스코리아는 몰라보게 달라지기 시작한다. 말 그대로 발로 뛰기 시작했다. 스스로 발가벗고 뛴다는 각오로 영업에 나섰다. 99년 가을쯤 5억원의 투자를 받은데 이어, 4/4분기에만 12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승승장구했다.

2000년초에는 40억원의 외부 투자유치에 성공, 사업확장의 기반을 다지게 된다. 하지만 벤처열풍에 힙입어 얼떨결에 굴러들어온 40억원의 ‘달콤한 꿀맛’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박혁진은 이후 닥쳐올 처절한 고통의 세월을 전혀 짐작조차 못하고 있었다.

박혁진은 한동훈에 이어 또 한 명의 결정적인 사업적 파트너를 만나게 된다.바로 현재 리눅스코리아 개발이사를 맡고있는 이만용씨. 그 역시 동호회 모임을 통해 우연하게 만났다.

이만용씨는 국내에 리눅스를 처음 들여온 ‘리눅스 원조’로, 리눅스개발자들사이엔 ‘살아있는 전설’로 통하는 프로그래머. 알짜리눅스를 개발했던 주인공이다. 박혁진은 99년, 삼고초려끝에 이만용씨를 영입하는데 성공, 오늘날 리눅스코리아의 대변신에 성공한다.

리눅스코리아가 리눅스에 관한한 국내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맨파워를 자랑하는 것도 이만용씨를 영입한 덕분이라는게 박 사장의 설명.

리눅스가 좋아 열렬히 활동했던 동호회에서 두 명의 지인들을 운명적으로 만난 박혁진. 이 두사람과의 인연으로 인해 박혁진 역시 험난한 벤처무대로 인생항로를 옮겨놓으며 격랑속으로 빠르게 빨려들고 있었다.

◆ "내 손에 피를 묻혀라"

“박혁진 이사님, CEO를 맡아주셔야 겠습니다. 더 이상 대안이 없습니다” 창업자의 요청에 따라 합류한지 2년이 지난 2000년초, 박혁진은 뜻밖의 제안에 또한번 고민에 휩싸인다.

기관투자자 주주들이 CEO교체를 요청하며 대표이사를 맡아줄 것을 제안했기 때문. 전임 사장 역시 전형적인 개발자이다 보니, CEO로서 영업 등 대외활동을 해야하는 것에 크게 부담을 느낀 탓에 스스로 물러나기로 결정한 것.

2000년 5월, 박혁진은 외부의 요청에 의해 어쩔수 없이 CEO를 맡게된다. 후배 도와주려 합류했다가 급기야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인 회사의 운명을 책임질 ‘선장’을 맡은 셈이 됐다.

CEO 박혁진에게 그 이후 닥쳐올 엄청난 시련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정말 그땐 전혀 준비가 안됀 상태에서 CEO를 맡았습니다. 말이 전문경영인 체제지, 제가 뭐 경영을 해봤나요”

하지만 주사위는 이미 던져진 상태였다. 살벌한 현실에 눈을 뜨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CEO 박혁진은 핵심사업에 대해 감을 잡고부턴 두려움에 밤잠을 설치기 시작했다.

“리눅스가 그 시절만 해도 비즈니스로 편입이 안된 상태였습니다. 그저 리눅스가 좋아 회사를 설립하다보니, 선명성만 지나치게 강조되고, 돈버는 것엔 전혀 민감하지 못하고 둔감하기 짝이 없었죠. 대다수 리눅스 스타들이 엄청난 시행착오를 겪은 게 이 때문입니다”

문제는 돈을 벌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당연히 돈 될만한 것은 닥치는대로 했다. 인텔서버도 열심히 팔았다. 리눅스,유닉스를 포팅하고, IBM 메인프레임을 포팅하는 등 매출을 만들수 있는 것엔 물불가리지 않고 뛰어들었다.

99년 15억원에 불과하던 매출은 2000년 60억원,2001년 80억원으로 급증했다.하지만 매출증가에도 불구하고, 적자폭은 오히려 점점 늘어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투자받은 자금은 바닥을 드러내고, 50명을 훌쩍넘는 식구들 월급날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스스로 생존할수 있는 수익구조를 만들기는 커녕 적자만 눈덩이처럼 불어 갔다. 피가 마르는 고민의 시작이었다.‘ 리눅스가 과연 어디로 갈까?” 방향성에 대한 판단이 문제였다.

“당시 경쟁사인 모 회사가 200억원 펀딩을 받은후 모 전직 정통부장관을 영입하는 등 엄청나게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섰죠. 그러다보니 너도나도 팽창주의에 도취했던 것같습니다”

박혁진이 내린 결론은 1위 기업처럼 양적 팽창으로는 살아남을수 없다고 보고, 질적인 차별화로 승부수를 내야한다는 것. 손실을 내는 사업부서를 원점에서 재검토했다.

“리눅스교육센터는 리눅스사업이 아니라 교육사업이더라구요. 또 메인프레임포팅사업 역시 리눅스사업이 아니고, 메인프레임사업이었죠. 어느날 정신을 차려보니,늘 핵심을 비켜간 사업을 하고 있더라구요. 세일즈인력과 연구개발인력이 엄청나게 많이 들어가는 사업말입니다”

하드웨어사업과 교육사업,포털사업 등 “실패한 사업”을 과감하게 정리했다. 박혁진의 CEO로서 가능성은 이때부터 조금씩 발휘되기 시작한다.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서 그는 본능적으로 생존의 방법을 찾아간다.

놀랍게도 스스로 손에 피를 묻히는 대결단을 내린 것. 2002년 8월,박사장은 직감적으로 위기를 느끼고 무려 전체 식구의 40%를 정리하는 초강수 구조조정을 단행한다.

얼마나 가혹하게 털어냈는지 최근 5년간 리눅스코리아를 거쳐간 인원은 무려 80명이 넘을 정도. 식은 땀을 훔치며 악몽에서 벌떡 깨어났던 게 몇번이었는지 기억조차 없다.

한 식구같이 지내던 직원들을 내보낼 때의 심정은 가슴저미는 고통 그 자체였다. 업계는 당시 구조조정을 안했으면 아마 리눅스코리아는 벌써 없어졌을 거라고 입을 모은다. 엄청난 구조조정은 하드웨어와 시스템사업 모두를 포기하는 데 따른 불가피한 조치였다.

2001년말 영업방향을 통신회사쪽으로 틀었다. “리눅스 OS가 아무리 좋아도 그 위에 쓸수 있는 응용프로그램이 없으면 무용지물입니다. 돈되는 곳에 리눅스가 사용될수 있어야만 매출을 만들수 있겠더라구요. 통신서비스쪽으로 결론을 내렸죠”

니치마켓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이른바 케이블망 관리시스템, 무선랜인증시스템, IP자동부여시스템 등 IP인프라솔루션 사업이었다. 그는 니치마켓의 경우 경쟁업체가 그다지 많지 않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경쟁사가 적다보니, 조금만 파고들어도 선두기업이 될수 있겠더라구요” 비즈니스의 큰 방향을 수정한후, 손실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스스로 손가락을 잘라낸 박혁진은 서서히 리눅스코리아의 성장엔진을 찾아가고 있었다. “사실 5년간 여러 사업을 시도하며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방향과 생존방식을 터득하는데 혹독하게 수험료를 낸 셈입니다”

리눅스코리아, 어떤 회사인가
설립일1998.3
종업원25명
자본금33억원
연락처(02)3430-1400, www.linuxkorea.co.kr
사업영역솔루션 개발 및 판매, 오픈소스 기반 시스템 구축 및 컨설팅
경영계획오픈 소스의 가치 창출과 전달을 통한 투명 경영 선도자
매출목표2004년 30억원

◆ 박혁진의 리눅스론

박 사장은 최근 몇 년간의 고통스런 세월을 스스로 ‘광풍’이라 진단한다.

“어디 멀리 여행을 갔다온 느낌입니다.내적으로 정말 많이 달라진 걸 느낍니다”

박 사장이 최근 ‘초심’에 남다른 집착을 보이는 것도 이 때문. 지금이 초창기 사업을 시작할 때와 비슷하다는 설명이 이어진다. 한때 60명 가까이 되던 직원이 지금은 25명 규모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즈니스의 초심으로 돌아갈 때라고 강조한다.

“몸은 벌써 많이 무거워졌지만, 마음만은 분명 초심으로 돌아가야 합니다.그러지 않고선 위기를 극복할 수 없습니다” 박 사장의 영업대상은 작은 중소벤처기업에서 이젠 SK텔레콤,KT,하나로통신,두루넷 등 거대 통신회사로 바뀌어 있다.

돈버는 것에 대한 박 사장의 감각은 요즘 거의 동물적이다. “국산 소프트웨어는 안하는게 좋습니다. 개발만 해놓으면 경쟁사는 물론 고객사도 가격을 후려칩니다. 돈을 벌수 있는 구조가 아닙니다”

그가 ‘인프라솔루션’을 떠올린 것도 이런 안정적인 수익기반 확보차원의 결단이다. 지난해 미국 노미넘사와 손잡고 도메인,IP솔루션사업에 뛰어든 것도 같은 맥락.

리눅스사업에 대한 박혁진의 생각을 들어보자. “리눅스코리아로 회사이름을 정한 것은 리눅스로 밥먹고 사는 세상을 만들자는 뜻입니다. 아주 이상적인 개념이었죠”

리눅스비즈니스에 대한 박혁진의 진단은 매우 단호하다. “지금까지의 비즈니스마인드는 리눅스마니아들의 조건없는 의무감만이 넘실댄 개념이었다고 봅니다. 소스코드를 오픈한 리눅스정신과 가치에 대해서는 리눅스회사,고객사 모두 흡족해합니다”

그의 톤은 더욱 높아진다. “하지만 결정적인 문제는 리눅스의 경우 돈을 벌수 있는 비즈니스단위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예전엔 그저 의미있는 일에 사업의 지향점을 뒀지만, 이젠 철저히 이윤추구가 최우선입니다”

혹독한 시련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수익’만이 유일한 답이라는게 박 사장의 지론이다. 99년 리눅스업계 최고의 프로그래머인 이만용씨를 스카우트한 것도 이런 사업가적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박 사장은 이만용씨가 개발한 토종 리눅스인 알짜리눅스를 곧바로 포기하고 미국 레드햇사제품을 들여오는 결단을 내린다. 각 커뮤니티에서는 ‘매국노’라며 난리가 났다.

“전혀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이미 상황은 애국심을 주창할만큼 한가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죠. 기업에게 공익적인 덕목을 요구하는 것은 맞지 않고, 있을수도 없는 일이죠”

엄청난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지만, 박 사장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리눅스에 대한 박혁진의 철학은 리눅스 자체가 무작정 고집해야할 절대 가치도, 애국심을 갖고 계속해야할 의무감도 아닌 철저히 이윤을 추구해야할 비즈니스일 뿐임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 박혁진의 성공론

“아니 제 월급에서 그걸 제하면 어떡합니까? 접대비로 처리해야하는 것 아닙니까?”

박혁진 사장은 요즘 CFO와 얼굴을 붉히며 따지는 일이 잦다. CFO가 비용에 관한한 대표이사와 특별한 상의없이 정해진 원칙대로 엄격하게 처리하기 때문이다.

박사장은 최근 회사내 의사결정시스템을 철저히 견제와 균형이 이뤄지도록 정비했다. CEO를 포함해 어떤 사람도 독주를 할 수 없도록 만들어 놓은 것. 특히 돈에 관한한 혹독하리만치 투명하고 엄격한 원칙을 적용, 철저히 통제한다.

“원칙과 투명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독단을 막으려면 견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게 핵심입니다” 기획과 절차,결과에 대해서는 늘 투명하게 처리한다.

이를테면 출퇴근은 자유롭게 하되, 정해진 시간만큼 일을 하지않을 경우는 가혹하게 처리한다는 것. 개발일정 역시 마찬가지. 약속한 개발일정을 맞추지 못하면 시말서를 쓴다.

직급에 상관없이 의견을 존중하고 결정권을 주지만, 결과에 대해서는 철저히 책임을 묻는 시스템을 고집한다. “저는 훈련의 문제라고 봅니다.적당히 해도 책임지지 않고, 결과가 부실한데도 책임을 묻지 않으면 조직은 늘어지게 돼있습니다. 늘 긴장하고, 일한만큼 대우를 받는 조직이 돼야 합니다”

CEO를 맡고나서 개인적으로 할 수 없는 일이 참 많다고 귀띔한다. 스스로 회사를 경영하면서 지켜야할 원칙 때문에 절친한 후배들과 인연을 끊은게 한두번이 아니다.

“늘 최선보단 차선을 선택한다는 생각이지만 항상 실적에 대한 부담을 느낍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안나올 때가 참으로 힘들죠. 초창기 수없이 실패하고 시행착오를 겪는 것은 어쩔수 없는 과정이라고 봅니다. 실패의 확률을 줄이는게 CEO의 역할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CEO의 역할에 대해 박혁진 사장의 지론은 명쾌하다. “사실 CEO는 권한보다 책임의 무게가 훨씬 많은 자리입니다. 특히 제한된 상황에서 뭔가를 선택해야할 때는 정말 힘들죠”

박혁진의 성공론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첫번째 키워드는 ‘자기 스스로를 잘 알고 인정하는 것’이란다. “자기 스스로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정확하게 판별해낼수 있어야 합니다. 사업은 자금,영업 등 수많은 리소스가 필요하죠. 준비가 안된 상태에선 100% 실패합니다”

두번째는 ‘의지’란다. “즐겁게 사업을 할수 있는 의지가 정말 중요합니다. 괴롭고 힘든게 아니라 신나게 일할수 있는 의지, 그러면서도 끝까지 밀고나갈수 있는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 성공론으로 ‘원칙’을 강조한다. “시작한 후에는 절대 후회해선 안됩니다. 원칙을 가지고 무조건 밀어부쳐야 합니다. 돈과 기술,인력은 늘 부족하고, 써버린 돈에 대한 회한, 그리고 수많은 유혹들이 즐비합니다. 이 때 핵심은 원칙을 지키는 것입니다”

박 사장은 직원들에게 늘 ‘열정’을 주문한다. 실력보다는 직원들 개개인 마음속에서 열정이 우러날 때 비로소 뭔가를 이뤄낼수 있다는게 박 사장의 지론이다.

“벤처에서 같이 호흡을 한다는 것은 ‘돈’의 문제가 아닙니다. 같이 일하는 이유를 스스로 자문한뒤, 이유가 있으면 함께하는 것이고, 아니면 떠나라고 주문합니다. 이런 내적인 열정과 비전을 함께하는 자세가 없이는 벤처기업에 있을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박 사장의 꿈은 아주 소박하다. 거창한 슬로건과 폭발적인 성장세엔 관심이 없다. 오로지 이 시련기를 견딜수 있는 생존력을 갖춰 내실있게 성장하는 게 그의 꿈이다. 물론 리눅스코리아를 세계적 기업으로 키우겠다는 꿈도 숨기진 않는다.

그는 양적인 팽창은 의미가 없고, 이젠 글로벌기업들과 경쟁에서 이길수 있는 특화한 기술력만이 살 길이라고 강조한다. 박사장은 그래서 요즘 매출확대보다는 새로운 니치마켓을 찾아내는 일에 더욱 많은 리소스를 투입한다.

최근 혹독한 시련기를 겪고난후 벤처산업에 대해 다들 너무나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것에 대해 박 사장은 우려를 나타낸다.

리눅스코리아 박혁진 사장.그는 끝없는 시련과 혹독한 한파를 극복하고 리눅스사업의 가능성을 열어제친 리눅스업계의 진정한 모험기업가였다.

[인터뷰를 마치며]

리눅스코리아 박혁진 사장은 "끝없는 질주에 지치지 않느냐"는 질문에 독특한 답을 내놨습니다. 에너지가 고갈될수록 더욱더 확고한 펀더멘탈리스트가 돼간다는 느낌이라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원칙과 기본에 더욱 집착하는 것같다고 말했습니다. 가장 행복할 때는 주말에 자녀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고 소개했습니다.

/김광일(GCM 대표이사) goldpar@gc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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