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지한파 중국인을 찾아서] (2)한국 기업 속의 중국인


 

벤처기업이라도 중국사업을 조선족 통역과 한두 명의 파견 직원만으로 성공하긴 힘들다. 성공한 한국기업에는 실력있는 조선족이나 한족 중국인이라는 탄탄한 인적 요소를 갖추고 있었다. 그들은 단순히 기업의 핵심 인력이 아니라 지한파(知韓派)로 자리매김하며 양국간 이해를 넓히고 왕성한 교류를 보장하는 촉매제나 다름없다.

◆ "그 직원이 사모님일 줄이야"

그는 벌써 3년여 동안 한국기업들과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 싱훙 씨는 “한국 게임기업들이 중국시장에 진출하면서 북경대나 청화대 등의 엘리트들을 구하긴 했지만 기대와 달리 직원들의 수고(노력)가 적어 상당한 애로를 겪었다”는 말로 한국 벤처기업에서의 경험담을 꺼내놨다.

위즈게이트(현 엠게임)라는 한국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마음에 드는 직원 구하기에 어려웠던지 위즈게이트 사장은 그와의 면접에서 두가지를 물었다.

‘결혼은 했느냐, 아이가 있느냐’가 그 하나였고, ‘인터넷 사업에 대한 경험이 있느냐’가 다른 하나였다. 결혼과 자녀에 대한 물음은 책임감이 얼마나 강한지를, 인터넷 사업경험은 제대로 IT분야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지를 확인하는 절차였다.

IT 경력이 10년이나 됐고 결혼도 했기에, 위즈게이트가 찾는 적임자였다. 이런 인연으로 싱훙씨는 지난 2000년 11월 길지는 않았지만 마음 가짐을 바꾼 한 달간의 서울연수를 가지게 됐다.

"내자리 근처에 임신한 여직원이 있었습니다. 알아보니 7개월 째더군요. 수수한 차림의 그는 무거운 몸에도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내가 깜짝 놀란 것은 얼마 뒤 한 직원의 환송회 자리였습니다. 유학을 떠나는 직원과의 회식자리였습니다. 임신한 여직원이 사장님과 함께 들어서는 겁니다. 그때서야 그 직원이 사장님 부인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중국에서도 많은 여성들이 직장생활을 하지만 사장 부인쯤 되면 대게 전업주부로 편안한 생활을 하는 편이었기에 싱훙씨는 잔잔한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한국 벤처회사에서도 이런 경우가 흔하지는 않지만 '벤처에선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는 말에 그는 ‘아, 이게 벤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회사가 중요한 결정을 할 때도 직원들과 사장이 허심탄회하게 토론하는 것도 그에겐 생소했다. “사장이 직원들을 모두 부르더니 어떤 말이든 다 해보라는 겁니다. 일이 너무 힘들다거나, 월급이 적다, 사업방향을 돌려야 한다는 말들을 거리낌 없이 쏟아냈습니다. 회사 지분도 거의 없는 직원들이 제 목소리를 내는 이런 문화는 생소했습니다. 그리고 중국에서도 이런 벤처문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어요.”

회사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자 그도 직접 사장실을 찾아 보았다. 업무시간이 한참이나 지났는데도 게임을 하는 직원이 많았지만 아무도 지적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회사 게임도 아닌데’ 말이다.

그가 말한 손승철 엠게임 사장의 대답은 이랬다. “하이테크(IT 벤처) 회사는 직원들이 재산이고 신임해야 한다. 그들은 사실상 업무시간이 따로 없다. 아마 게임하고 있는 직원들은 자신의 일을 스케줄 대로 다 하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다른 일을 하더라도 나는 신경을 안 쓴다.”

사장이 퇴근해도, 누가 시키지 않아도 늦도록 일하는 모습을 본 그는 손 사장의 말에 수긍이 갔다.

그는 이제 중국, 북경에서도 중견 게임회사에서 중책을 맡고 있다. 100여명의 직원이 그의 말 한마디에 따라 제 역할을 수행하는 온라인 게임사업의 실무 책임자가 됐다.

“한국서 배운 것을 많이 시도해 보려 합니다. 아직은 일은 적게 하고 월급은 높게 원하는 경우가 많아 적용하기 힘든 부분도 많아요. 회사 지분이 적으면 애착이 없는 것도 문제구요. 하지만 회사 문화를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합니다. 중국은 하루가 멀다하게 변화하고 있고 게임회사는 그런 벤처정신을 받아들여야 하니까요.”

◆ 대중(對中) 꽌시(關系)의 교두보

북경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 아이파크(Ipark)는 올 봄 ‘심기일전’, 중국(한족) 인력들을 대거 보강했다.

모영주 북경아이파크 소장은 "한국 IT를 소개하고 한국 기업들의 중국 사업지원을 위해 우수한 한족 인력이 절실했다"고 말했다. 중국시장 개척에는 한족 직원이 필수적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한국회사에 들어와 보니 일하는 속도가 정말 빨랐습니다. 업무강도도 높구요. 하지만 여기는 밖에서 들었던 군대식 조직이라는 말은 달랐습니다. 사실 중국인들 사이에선 한국 기업들이 일을 많이 시키고 조직이 군대식처럼 딱딱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아이파크의 경우 중국 회사와 분위기가 비슷합니다. (모영주) 소장이 중국에서 10여 년을 일하면서 이곳 비즈니스 감각을 파악한 때문이겠죠.”

대학 졸업 후 그는 청화대 관계회사인 '청화둥방' 등을 거치며 IT 마케팅 분야에서 쭉 일해왔다고 했다. 중국내 IT분야 동향과 이쪽 진출이 많은 청화대 인맥을 훤히 꿰뚫고 있을 터였다. 북경아이파크에서도 그의 이런 경력을 높이 산 것임이 분명했다.

장슈씨는 중학생 시절부터 PC에 관심이 많아 이런저런 책을 뒤졌고 졸업 후에는 IT회사에서 경력을 쌓은데다 MBA 코스를 밟았으니 중국 비즈니스에 딱 들어맞는 인물인 셈이다.

그 역시 “중국인이라는 점 보다 중국 IT 시장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는지, 제품의 시장동향이나 전망 등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지 등 능력이 중요하다"고 말했지만 많은 중국 전문가들은 중국 마케팅의 성공요소로 '한족'을 꼽는다.

사업 초기 단계가 지나면 아무래도 소수인 조선족 엘리트나 중국 문외한인 한국인보다 경험적으로나 인적 네트워크상 한족 인력들이 유리한 측면이 많다는 시각이다.

한국정보공학 추영진 중국법인장은 "대기업 뿐만 아니라 중소기업들도 사업이 본 궤도에 오르면 중국 동향에 밝고 실력있는 현지 마케터들에 눈을 돌린다”고 말했다.

아이파크에서 장슈씨의 역할은 신식산업부(우리나라의 정보통신부)나 그 산하 기관들과의 긴밀한 '꽌시(關系)'를 맺고 이를 유지하는 것.

북경의 여러 IT 매체와도 관계를 돈독히 해 한국의 IT 제품을 더 많이, 더 자세히 소개하는 일, 인터넷의 IT 전문 사이트나 매체를 통해서도 한국기업과 제품을 알리는 것이다. 아이파크의 새 멤버들이 가세한 이후 최근 중국의 PC 전문 신문중 한 면 전체를 '한국 IT면'으로 편집하는 경우도 생겼다.

장슈씨는 “실제로 일해 보니 한국이 IT 강국이라지만 중국에서 이런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며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서라도 한국 기업들의 문화나 IT 제품을 꼼꼼히 챙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모바일 서비스나 CDMA, 온라인 게임 등 한중간 교류를 통해 양국 기업들이 큰 수익을 내고 있다"며 "국가 영도자(지도자)끼리도 동북아 경제협력 강화를 천명한 만큼 IT 교류는 더욱 활기를 띌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아이파크에서 실력을 쌓은 다음 장차 IT 분야 컨설팅이나 기획 일에 도전할 것”이라며 “한국이 좀 더 나은 기술이 있다면 이를 중국기업이 잘 소화할 수 있도록 다리 역할을 하는,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 현지 기업이 지한파 양성소

중국에서는 삼성전자나 LG전자 같은 대기업에 입사하거나 이를 원하면서 한국에 관심을 가지는 중국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휴대폰이나 온라인 게임 등 IT 분야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며 한국을 이해하려는 저변이 확대되고 있는 것. 중국 내 삼성계열사에는 대략 4만5천명의 직원이 근무한다. 이중 대부분이 한족 직원이다.

삼성전자는 이를 위해 북경대, 청화대, 연변과기대 등 주요 17개 중점대학(명문대학)을 중심으로 장학금 지원, 기업 PR 활동, 취업설명회 등을 개최하고 있다.

배 상무는 “산학협력을 통해 우수한 인재들을 확보한다는 전략에 따른 것이지만 결국 이들이 삼성 글로벌 경영의 ‘첨병’이자 한중교류의 우군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20여년을 삼성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지난날을 되돌아 보면, 처음 받은 3주가량의 연수가 내 직장생활에서 가장 큰 영향을 줬다"며 "삼성은 중국에도 연수시설을 늘려 이들을 진취적인 글로벌 비즈니스맨으로 육성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삼성전자 업무발전부 차우진군(56, Zhou Jin Kun) 총경리는 “삼성전자만 보더라도 올해 작년보다 10% 증가해, 약 700명이 입사했고 신입직원들은 한국 기업이 분투정신이 높고(열심히 일한다) 직원 관리체계가 잘 갖춰져 있다는 것을 알게 돼 좋은 기업이라는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SK텔레콤 북경법인 조정식 사업기획팀장은 "총 30여명의 직원 중 중국직원이 25명에 달한다"며 "중국인의 역할이 큰 만큼 IT분야 중점대학인 우전대와 산학 협력으로 인턴제도를 운영하는 등 SK텔레콤에 대한 이미지를 높여나가는 일에도 신경쓰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한 중국인 IT 기업 관계자는 "하지만 아직 한국 기업들은 중국에서 비즈니스를 하면서도 중국인에게 권한이나 업무범위를 명확히 부여하지 않거나, 중국인 문화에 맞지 않는 일방적인 조직문화를 강요한다거나 고용인에 대한 보험 등 복지투자가 미흡한 경우가 적지 않다"며 "중국인에 대한 이해에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한 실정"이라는 비판도 빼놓지 않았다.

베이징=강호성기자 chaosing@inews24.com







alert

댓글 쓰기 제목 [지한파 중국인을 찾아서] (2)한국 기업 속의 중국인

댓글-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로딩중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