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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스타트업의 드라마 '레이븐' 탄생과 성공


'레이븐' 나오기까지…청년 창업자 유석호의 성공스토리

[문영수기자] 개발과 성공 모두 한 편의 드라마와도 같았다. 진저리 나는 고생 끝에 깨달음을 얻은 듯한 유석호 에스티플레이 대표의 인생 여정이 그랬다.

그가 들려준 모바일 게임 '레이븐'의 성공기는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출시 사흘 만에 국내 시장 정상에 오르는 기염을 보이기까지 레이븐의 탄생 스토리는 고군분투한 유 대표의 인생 여정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레이븐의 화려한 성과 뒤에 숨겨져 있었던 그의 노력을 되짚었다.

◆ 잘 나가던 디자이너에서 게임 개발자로

유 대표의 첫 직업은 디자이너였다. 웹사이트와 3D 영상 제작을 주로 맡았다. 약간의 돈과 명성도 얻었다. 그러나 자신의 일이 아닌, 남의 일을 한다는 점은 늘 그를 공허하게 만든 요인이었다. 때마침 2010년부터 불어닥친 스마트폰과 스타트업 창업 열풍은 그런 그에게 안정이 보장된 디자이너 대신 어렸을적 장래희망이었던 게임 개발이라는 꿈을 꺼내들게 만들었다.

"만약 스마트폰이 나오지 않았다면 게임 개발은 엄두도 내지 않았을 겁니다. PC 온라인이나 콘솔 게임 개발은 쉽사리 뛰어들기 어렵잖아요? 뒤늦게나마 나만의 IP(지적재산권)를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그는 게이머였다. 평소 즐겨했던 콘솔 액션과 슈팅(FPS) 게임을 스마트폰에 구현하고픈 욕심이 있었다. 당시에는 너 나 할 것 없이 캐주얼 게임을 만들고 있었지만 유 대표는 다른 각도에서 게임산업을 바라봤다. 지금으로부터 2년 뒤면 액션 역할수행게임(RPG)이 대세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당장 2~3개월을 투자해 캐주얼 게임을 만들어봤자 기존 인기작들과의 경쟁은 힘들 것이라고 봤습니다. 1년 6개월 뒤의 상황을 미리 예측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죠."

2012년 1월. 그는 인생의 전환점을 안겨준 중대한 결단을 내린다. 디자이너 시절 모아둔 자본금으로 친구와 단둘이서 에스티플레이를 창업한 것. 거창한 사무실은 없었지만 뭔가 이룰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부풀기 시작했다.

◆ 모두가 100메가 만들때 나홀로 1기가 게임 도전

유 대표와 에스티플레이는 장장 6개월에 걸쳐 게임 시제품(프로토타입)을 완성하기에 이른다. 주변에선 찾아볼 수 없던 풀 3D 그래픽 액션 게임이었다.

회사의 규모도 커졌다. 역삼동에 사무실을 냈고 직원 숫자도 어느덧 15명까지 늘어났다. 그는 "갤럭시S2에서 프로토타입이 무난히 구동되는 것을 확인하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그러나 자신감도 잠시, 곧 위기가 찾아왔다. 초기 운영 자금이 바닥을 드러내면서 회사 경영에 적신호가 들어온 것이다. 손쉽게 진행될 것으로 낙관했던 퍼블리싱 계약도 요원하기만 했다. 발목을 붙든 것은 '터무니없는' 용량 때문이었다.

"당시 출시되는 모바일 게임이 50메가, 커봐야 100메가였어요. 그런데 우리 게임 용량은 1기가바이트(GB)에 육박했으니 그때 만난 퍼블리셔들이 모두 손사레를 쳤죠. 미래를 보고 만든 게임인데……."

믿었던 투자 유치까지 물거품이 되면서 회사 사정은 더욱 악화되기만 했다. 직원들 월급조차 챙겨주기 힘든 나날이 이어졌다. 바닥까지 내려와야 했다. 빌릴 수 있는 돈은 다 빌리고, 팔수 있는 물건은 다 팔았다. 종국에는 부모님을 찾아가 집을 담보로 석달치 회사 운영자금까지 융통했다. 노부모는 아들의 '도박'을 흔쾌히 허락했다.

◆ 넷마블과 이어진 특별한 인연

더이상 내려갈래야 내려갈 수 없는 처절한 인생이 우연히 만난 '기연'으로 인해 반전을 거듭하는 소설 속 이야기는 읽는 독자에게로 하여금 묘한 카타르시스를 안겨주기 마련이다.

그동안 자신을 박대하던 수많은 퍼블리셔와 만나면서 마음의 상처를 받았던 유 대표는 처음 만난 김건 대표가 자신에게 진심어린 조언과 심경을 공감해준 것에 크게 감격한다. 모바일 게임 '다함께 퐁퐁퐁'이 히트해 김 대표의 주가는 치솟을데로 치솟았지만 그 어떠한 '거만함'도 없었다고 유 대표는 회고했다. 두 개발자의 진심이 통했다.

"'목적있는 게임을 만들라'는 김 대표의 조언을 듣자 무언가가 머리를 치는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왜 그토록 퍼블리싱 계약이 이뤄지지 않았는지 이유도 알 것 같았죠. 바로 회사로 돌아가 임직원들을 불러모았습니다."

김 대표와의 만남을 계기로 그는 그동안 만들어온 게임을 전면적으로 뒤엎는 과감한 결단을 내린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이었다. 주어진 여유는 불과 한달 남짓. 그러나 그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직원들을 설득했다. 그 결과 에스티플레이는 게임의 재미는 기본이며, 분명한 목적을 부여하는 게임으로 재디자인키로 결정한다. 레이븐 프로젝트가 본격화된 순간이었다. 시간은 다시 흘렀다.

"오후 4시에 새 빌드가 나오자마자 그길로 김 대표에게 달려가 게임을 보여드렸죠. 재밌어 하는 반응에 바로 느낌이 왔습니다. 됐다 싶었죠."

그뿐만이 아니었다. 방준혁 고문(현 넷마블게임즈 의장)과의 인연도 이날 맺어졌다. 그것은 전혀 예기치 못한 '사건'이었다. 김 대표의 소개로 초기 레이븐을 접한 방 고문은 단 5분만에 퍼블리싱 계약을 진행하라는 결정을 내린다. 1년6개월 동안 정처없이 떠돌던 게임이 즉석에서 넷마블이라는 대형 퍼블리셔와 맞닥뜨린 것이다.

"훗날 방 고문께 여쭤봤습니다. 콘텐츠도 없고 용량만 큰 시제품에 불과했던 레이븐을 선택한 이유를 말이죠. 그러자 방 의장은 '10%의 장점을 봤다. 나머지 90%는 넷마블이 채워줄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대답하시더군요."

◆ 처음부터 1등 노려…이용자 바라기 될 것

이후 체계적인 넷마블의 지원 속에 급성장한 레이븐은 재미와 콘텐츠를 보강, 올해 3월 출시됐다. 이후는 모두가 아는대로 폭발적인 흥행 기록의 연속이었다. 3월 12일 정식 서비스를 시작한 레이븐은 애플 앱스토어는 물론 국내 최대 오픈마켓인 구글플레이까지 석권하며 비상한 화제를 모았다. 오랜기간 왕좌를 차지하던 외산 게임 '클래시 오브 클랜'까지 2위로 밀어낼 만큼 레이븐의 파급력은 상당했다.

어느정도 예상된 결과였다고 유 대표는 강조했다. 처음부터 1위를 바라보고 레이븐을 준비했다고 자신했다. 에스티플레이뿐 아니라 넷마블의 모든 대표들이 1위를 염두에 두고 게임을 개발한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다만 생각했던것 보다 빨리 그 성과를 달성한 점은 그 역시도 놀란 부분. 유 대표는 앞으로도 이용자와 소통하는 레이븐을 만들어 나갈 것을 약속했다.

한국 모바일 게임 시장의 '신데렐라'로 거듭났건만 그는 예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고 했다.

"우리 게임의 매출이요? 관심없습니다. 거기에 연연하다보면 게임의 재미 보다 매출에 얽메인 콘텐츠를 개발할 여지가 높아지잖아요. 그 시간에 이용자들이 들려주시는 목소리에 더 귀기울이겠습니다. 심지어 욕도 감사할 정도예요."

◆유석호 대표(36,79년생)는 디자이너로 사회 생활을 시작해 2006년 NHN(현 네이버) 디자인팀을 거쳐 2007년 웹·영상 에이전시 알람미디어웍스 이사로 재직했다. 이후 자신만의 지적재산권(IP)을 만들어 게임사업에 뛰어들고자 2011년 에스티플레이를 설립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대표작이자 처녀작은 국내 주요 오픈마켓 매출 순위를 석권한 모바일 게임 '레이븐 위드 네이버(with NAVER)'다.
문영수기자 mj@inews24.com 사진 정소희기자 ss082@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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