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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이익은 치솟고 협력업체는 적자 공포


애플式 생태계 이대로 좋은가(중)

[박계현기자] "애플하고 비즈니스를 하다 보면 0.004달러, 한국 돈으로 4전을 가지고도 협상해야 한다." 애플에 부품을 납품하는 한 국내 업체 임원의 푸념이다.

"애플은 매 분기마다 앞서 두 달은 정상구매량의 50%만 주문해 시장 가격을 떨어트리고 나머지 한 달간 싼 가격에 부품을 구입한다. 비정상적인 구매 패턴을 언제까지 그대로 둘 것인가?" 지난 7월 한 반도체 회사의 2분기 경영설명회에서 증권사 애널리스트가 던진 질문이다.

애플의 경이적인 영업이익률이 어디서 비롯되는 지를 엿볼 수 있는 단면들이다.

애플의 2010년 영업이익률은 28.2%, 2011년엔 31.2%, 2012년엔 35.3%였다. 해가 갈수록 높아졌다. 특히 전자기기를 판매하는 기업의 영업이익률이라고 보기엔 지나치게 높은 수준이다. 전자기기 판매 기업이 이런 수준의 영업이익률을 보인 사례는 찾기 쉽지 않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같은 경이적인 영업이익률은 결과적으로 애플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부품 공급이나 조립 생산을 위한 협력업체를 혹독하게 쥐어짜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인 IHS디스플레이뱅크의 자료에 따르면, 올해 애플의 반도체 구매수량은 2008년에 비해 약 5배 가까이 증가하는 등 압도적인 1위를 지키고 있다. 세계 낸드플래시 시장에서는 애플이 30% 이상의 물량을 구매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애플은 이같은 절대적인 '바잉 파워'를 통해 분기 초에 의도적으로 주문량을 줄여 부품 가격을 끌어내린 뒤 분기 말에는 출하량과 매출을 올리는 방법을 쓰는가 하면 개별 업체와 혹독한 단가 계약을 체결함으로써 엄청난 마진을 챙긴다는 이야기가 된다.

◆"日·中 전자 부품업체들, 'ifactory'로 전락"

스마트 시대를 열어젖힌 애플은 강력한 시장 지배력을 갖게 됐다. 부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과 같다. 그나마 삼성전자가 견제하는 수준이지만 쏠림이 강화되면서 전자 부품업계의 수급 균형이 무너졌다. 부품 업체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애플 눈치만 살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전직 애플 임원도 이 같은 상황을 두고 "애플에는 파트너십이란 것이 없다. 오직 애플만이 있을 뿐이다"라고 표현했다.

수십 명의 전·현직 애플 직원과 애플 협력업체들을 인터뷰한 '인사이드 애플'의 저자 애덤 라신스키는 저서에서 "애플은 마치 냉전시대에 미국이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에 '조언을 구했던'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부품회사들을 대한다. 미국과 나토는 동맹관계였지만 당시 초강대국은 한 국가밖에 없었다"고 기술했다.

대표적인 예가 중국의 폭스콘이다. 아이폰 조립업체인 중국의 폭스콘 공장은 9월에 이어 지난 10월 5일 또 다시 파업을 재개했다. 중국 현지 인력 100만명 이상을 고용한 폭스콘 공장은 최근 3년 동안 자살과 파업 사태 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파문이 가라앉지 않자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중국 공장에 방문하기도 했다.

캐나다의 정보서비스 그룹 톰슨로이터는 지난 2004년 초 6%대였던 폭스콘 영업이익률이 지난 2011년에는 2.4%로 절반 넘게 떨어졌다고 보고한 바 있다. 애플은 살찌고 있지만 애플 제품을 조립 생산하는 협력업체는 적자 공포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외신들은 애플이 그간 협력 업체를 쥐어짜 폭리를 취했지만 이젠 그 정도가 도를 넘어섰다는 비판을 가하고 있다.

영국 종합일간지 미러는 폭스콘 아이폰 공장을 잠입 취재해, 아이폰5의 제조과정상 인권침해 상황을 기사화했다.

'미러'에 따르면, 폭스콘 생산라인에선 30초당 제품을 하나씩 조립해야하며 노동자간 대화도 할 수 없고 14시간 업무를 하는 동안 화장실을 3번 이상 갈 경우 임금이 삭감되는 등 혹독한 노동 환경에 처해있다고 한다.

일본 '다이아몬드'지는 일본 가나가와 현에 있는 중견 전자부품 제조사 시코가 '애플 도산'의 첫 사례라고 소개했다. 스마트폰 카메라의 초점을 맞추는 모터를 개발한 시코는 애플에 부품을 대량으로 공급할 것으로 기대하고 신규 투자에 나섰다. 그러나 회사의 재무상태가 신규 설비를 충분히 도입할만큼 좋지 않다고 판단한 애플은 주문을 취소했다.

수급 균형이 무너지면서 시코 뿐 아니라 샤프·엘피다·소니·도시바·파나소닉 등 일본의 주요 전자부품 회사들 모두 공급처를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지난 6월 일본의 19개 주요 전자부품 회사 중 11개가 애플에 납품하고 있다며 일본 전자부품 업계 성장의 절반은 애플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고 예측했다.

그러나 일본 최대 메모리업체인 엘피다가 지난 7월 2천억엔(한화 약 2조7천억원)이라는 업계 예상치보다 낮은 금액에 마이크론에 인수된 데 이어 샤프도 구제금융을 신청해야 한다는 전망이 나오는 등 일본 전자업계는 전반적인 난조에 빠졌다.

샤프의 7일 기준 종가는 153엔으로 이는 올 초 대비 77% 폭락한 것이며 38년만에 기록한 최저가다.

◆국내외 부품업계, 생존 위해 공급량 줄여

상황이 어려워지자 부품 업체들은 생존을 위해 투자와 생산량을 줄이고 있다. 먼저 폭스콘을 비롯한 중국·대만 주문형제품생산(OEM) 업체들이 납품량을 줄이고 가격 인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폭스콘은 지난 2006년부터 애플의 거의 모든 제품을 조립했지만 다른 제품에 비해 조립이 까다로운 '아이폰5'가 애플에 첫 반기를 드는 촉매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아이폰5'는 제품 뒷면과 옆면을 알루미늄으로 포장해야 하는 등 공정이 더 까다로워져서 불량률이 높아졌다.

그러나 애플은 불량률과 상관없이 폭스콘에 지불하는 제품 한 대당 조립비용과 부품비용을 합친 단가 책정을 이미 끝낸 상태이기 때문에 불량에 대한 부담은 고스란히 이들 협력업체에 돌아간다.

테리 고 폭스콘 최고경영자(CEO)는 "아이폰5의 까다로운 품질 공정으로 제품 생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애플이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 달 초 품질기준을 올리자 폭스콘에선 두 번의 파업이 일어났다. 애플이 임금인상 등 당근 정책을 쓰지 않으면 사태가 겉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

국내에서 이같은 움직임은 맞춤형 부품 공급 업체보다는 범용 제품을 공급하는 메모리 반도체 업계에서 두드러진다.

도시바가 낸드플래시 생산량 30% 감산을 발표한 데 이어, 삼성전자도 지난 2011년 말 대비 낸드플래시 생산량을 웨이퍼 기준 6만장 정도 줄였다. SK하이닉스도 지난 7월 준공한 청주 M12라인을 낸드플래시·D램 혼용 생산이 가능하도록 설계 해 아직까지 시장 전체의 낸드플래시 생산량 증가에 기여하지 않고 있다.

공급량 감소는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 시장조사기관 D램익스체인지가 지난달 26일 발표한 낸드플래시 64Gb/32Gb MLC 고정거래가는 5.52달러로 지난 6월 3.84달러에 비해 약 70% 가까이 상승했다.

지난 5일 D램익스체인지가 발표한 3분기 낸드플래시 매출 동향을 살펴보면, 낸드플래시 업체들이 감산에 돌입했는데도 불구하고 낸드플래시 가격은 전반적으로 올라 공급업체들의 매출이 전분기에 비해 적게는 1.8%에서 많게는 19.7%까지 증가했다.

이와 관련, 삼성전자 홍완훈 메모리사업부 부사장은 "낸드플래시 가격은 공급부족 현상 때문에 올라가고 있는 추세"라며 "이 같은 공급부족 현상은 수급 불균형과 공급업체의 감산 추진 두 가지 다 모두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홍 부사장은 "공급이 다시 증가되고 수요가 비수기를 맞이하면 가격은 또 어떻게 변동될 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애플에 휘둘리던 일본·중국의 전자 부품업체들과는 달리 국내 부품업체들은 기술 경쟁력을 바탕으로 자신감을 나타내고 있다.

삼성전자 전동수 메모리사업부 사장은 지난 26일 '반도체의 날' 행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은 수요와 공급간 가치 공유 시대로 지금부터는 굉장히 기술이 앞서가야하고 그 기술이 세트에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며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던 과거와 달리 좋은 기술을 가져가면 가치를 인정 받는 가치 창조 싸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저성장 시대에 진입하고 몇몇 소수업체가 산업을 이끌고 있으니 그들의 정책에 사업이 망할 수 있다"면서도 "이 때문에 시장이 좋고 나쁘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 거래선들이 좋은 전략을 가지고 사업할 때 우리가 어떻게 부응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SK하이닉스 역시 "내년 1분기 애플·삼성의 신규 제품이 나오지 않더라도 학습효과가 있었기 때문에 공급과 수요가 크게 차이나는 일 또한 줄어들 것"이라며 수급 균형을 맞추는데 자신감을 보였다.

박계현기자 kopila@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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