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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체'가 튼튼해야 '상체'도 튼튼"


[벤처 중기가 되살아야 나라가 산다 ②]

야구는 주로 상체를 이용하는 종목으로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투수, 타격코치들은 하나같이 주로 '하체'를 강조한다. 공을 던지거나 방망이로 칠 때 상체를 이용하지만 하체의 힘과 밸런스가 제대로 뒷받침되지 않으면 좋은 투구와 타격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내로라하는 야구선수들을 보면 하체가 튼튼하다. 그들의 강속구와 강한 타격은 상체의 뛰어난 기술뿐만 아니라 하체의 튼튼한 근력이 뒷받침돼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산업 분야에서는 완제품을 만들어 시장에 판매하는 대기업이 '상체'의 영역이라면 부품을 생산해 공급하는 중소벤처기업은 '하체'의 영역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에 반도체, 디스플레이, 가전제품 등 세계 1등 전자 품목이 여럿 있지만 그의 바탕이 되는 부품은 아직 미흡한 것이 현실이다. 상체뿐만 아니라 하체가 함께 튼튼해져야 건강한 산업 생태계가 구성된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이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하도급 구조 및 정부 지원 등이 맞물려 있는 복잡한 문제다. 그러나 일차적으로 중소기업의 국제 경쟁력이 낮다는 점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중소 벤처기업이 대부분 담당하고 있는 전기전자 핵심 부품소재의 국제 경쟁력 문제는 심각하다.

중소기업청 관계자는 "중소기업 체질이 약하다. 개선이 잘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생산성은 2005년을 100으로 봤을 때 2007년 116, 2009년이 110이다. 기술 분야는 최근 5~6년 가까이 선진국 대비 기술 수준이 70% 후반에서 장기간 정체돼 있는 상태다.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 투자는 2007년 2.85%에서 2009년 현재 2.53%로 낮아졌다.

◆ "경쟁력 있는 핵심 부품이 별로 없다"

특히 '중소기업의 강국' 일본 의존이 심하다.

지식경제부의 3월 발표에 따르면 부품소재 분야 대일 무역적자는 2001년 이후 약 2배 증가해 2008년부터 200억 달러를 웃돌고 있다.

예를 들어 전기전자 산업의 핵심 기초소재인 '동판(銅版)'은 LED(발광다이오드)용, 리드프레임(반도체 칩을 올려 부착하는 금속 기판)용 동합금을 거의 전량 수입하고 있는 대표적인 무역 역조 품목이다.

국내 삼성전자, LG전자 등 전자제품의 수요가 전 세계 매출의 30% 이상을 점유하고 있지만 이를 만드는 핵심 부품의 수입 의존도가 상당한 것. 고기능성 동합금의 경우 2009년 기준, 일본의 후루가와전기, 일본광업 등이 매출 80%를 차지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LED, 반도체 리드프레임용 동합금 소재개발의 부진으로 세계시장을 선도하는 기초소재 개발이 매우 약하며, 무엇보다 사용목적에 적합한 합금개발이 미흡해 소재수입이 절대적"이라고 말했다.

LCD TV도 완제품은 한국 기업들이 세계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며 선도하고 있지만 핵심 부품 의존 문제가 점차 심각해질 전망이다. LCD TV의 '대세'인 LED-LCD TV는 2013년 전체 LCD TV의 61.5%인 1억3천만대를 차지하며 폭발적인 성장이 예상된다.

그러나 LED 광학 부품은 일본의 미쯔비시 레이온사 등에 1년 반 가량 기술 격차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광판의 경우 신뢰성이 높은 품목은 대부분 일본산 부품이 사용되고 있다.

유비쿼터스 환경 변화에 따라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보이는 음성인식 칩은 아예 양산되는 제품이 없다.

최근 단말기가 소형화되고 정보가전 제품 간 통신 네트워킹이 늘어나며 무선통신기능을 내장한 음성인식 시스템 기술이 중요해지고 있지만 국내에 개발, 양산되는 음성인식 칩이 없는 상태이다.

이에 반해 미국, 일본 등지에서는 간단한 고립단어 형식의 음성인식칩이 양산되고 있어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김윤명 팀장은 무역역조 현상의 심각성을 지적하며 "특히 중국 부품 시장의 급부상을 경계해야 한다. 중국 자유경제 구역에 글로벌 부품소재 기업들이 많이 들어오고 있다. 중국 부품소재 기업들이 경쟁력이 높아지는 게 어쩔 수 없는 현상이며 현재 해외에서 수입하는 소재를 자국 소재로 대체하는 경우 우리의 경쟁자로 부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힘을 모아야 같이 산다"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협업'과 평등한 관계가 이를 타개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KAIST 안철수 교수는 지난 3월 아이뉴스24와의 특별대담에서 "이제 국내에서만 기득권을 가진 기업들이 모든 결정을 할 수 없는 구조가 됐다. 국내기업들이 스스로의 이익극대화에만 신경을 쓰다보면 (아이폰 같은) 수평적인 네트워크 구조를 만들 수가 없다"며 수평적인 커뮤니케이션을 강조했다.

애플 아이폰의 '수평적' 비즈니스 모델이 한국 이동통신 단말기 시장은 물론 시대에 뒤떨어졌던 무선인터넷 시장에 던진 메시지가 앞으로도 유효하며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IT 제조업 분야에서 협력을 통해 소기의 성과를 거둔 사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술개발뿐 아니라, 해외시장 진출에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힘을 합쳐 '윈윈' 효과를 거둔 사례다.

삼성전자와 디에스엘시디는 지난 2008년 LCD의 핵심 부품인 BLU(백라이트유니트)인 초저가 52인치 BLUODM(Original Design Manufacturing) 개발에 성공했다. 이는 세계최초의 52인치 20램프 개발 사례다.

삼성전자는 컨설턴트 비용을 지원해 연구라인을 설계했고, 정시정량율을 향상시켜 제품 재고를 줄였다. 이를 통해 삼성전자는 1천309억원의 재무성과를 디에스엘시디는 생산성 24% 향상을 거두었다.

전자부품업체 화인알텍은 2004년도 중국에 이어 2005년도 폴란드, 멕시코에 LG전자와 함께 해외에 진출했다. 화인알텍은 LG전자가 지원한 진출초기 자금 20억원과 인력교류를 활용했다. LG전자는 화인알텍을 통해 프레스, 사출, 도장까지 다양하게 납품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해외 진출의 발판으로 삼은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대기업이 현지의 미약한 산업인프라로 현지 부품업체를 활용하기 어려우며, 중소 협력업체는 자사의 역량, 인재부족, 투자자금 등의 이유로 해외현지법인을 직접 설립하는데 큰 부담을 갖고 있는데 양사의 시너지 효과가 제대로 발휘된 사례"라고 평했다.

'협업' 측면에서 IT 제조업과 크게 다르지 않은 국내 IT 서비스업에서도 '상생' 추세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인터넷 포털 네이트를 운영하는 SK커뮤니케이션즈는 지난 해 외부 사이트와 자사 사이트를 연동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네이트커넥트'를 선보여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건실한 중소 쇼핑몰, 미디어, 동영상 사이트들은 네이트, 싸이월드 이용자를 통해 자사 사이트 이용을 늘리며, 네이트도 이용자 충성도를 높이는 윈윈 전략이다.

'애플 앱스토어'를 벤치마킹한 콘텐츠 장터 '네이트 앱스토어'도 개점 3개월 만에 누적매출 1억원을 넘겼다. 애플 앱스토어처럼 개발사들에 70%의 수익을 지급하기로 했다. 폐쇄적인 모델로 비판받던 국내 인터넷 주요 기업들 중에서 주목할 만한 사례다.

SK커뮤니케이션즈 관계자는 "네이트커넥트 쇼핑 제휴는 중소 소호몰이 종속되는 형태가 아닌 쇼핑 정보 유통을 위한 수평 형태의 제휴"라면서 "네이트 앱스토어는 개발자와 사업자의 상생을 통한 성장을 위해 가능한 개발자들에게 많은 수익이 돌아가도록 고안했다"고 말했다.

◆ 정부도 中企문제 실감…올해 지원 늘어난다

한편 중소 벤처기업 경쟁력 향상을 위한 정부 지원이 본격 늘어날 전망이어서 관심을 끈다. 정부 측은 중소기업의 중요성을 실감, 올해 본격적인 지원책을 속속 내놓고 있다.

중소기업청은 올해 170여개 기관이 참여하는 '구매조건부 기술개발', 중기 생산성 향상 지도, 대기업 중소기업 간 구매 상담회 등 협업 사업을 벌이고 있다. 대기업과 공공 기관이 참여하는 600억원 규모 펀드도 조성한다.

중소기업청 관계자는 "앞으로는 협력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고 품질을 높여야 된다. 대기업이 필요로 하는 기술을 중소기업이 갖춰야 한다"고 피력했다.

지식경제부는 지난 3월 장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부품소재선진화포럼을 출범, '세계시장 선점 10대 소재(WPM)' 및 '20대 핵심 부품소재'를 지난 1일 선정했다. 현재 뒤져 있지만 차세대 핵심 부품소재를 키워 이 분야를 세계 시장에서 리드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WPM에는 친환경 표면처리 강판, 플렉서블(Flexible) 디스플레이용 소재 등 10개가, 20대 핵심 부품소재에는 전자종이용 코팅 소재, 다중입출력 증폭기모듈 등 20개가 선정됐다.

WPM은 시장규모 10억불, 세계시장점유율 30% 이상 목표에 걸맞은 소재가, 20대 핵심 부품소재는 현재 시장수요가 크거나 향후 수요 급증이 예상되는 소재가 선정됐다.

지경부는 "WPM 및 20대 부품소재 개발 성공시 900억불 이상의 세계시장을 점유하고 약 15만명 고용을 창출하는 경제적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며 "WPM은 2개월의 과제 세부기획을 거쳐 6월초 공고, 7월말까지 사업단을 선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특별취재팀: 강호성 기자, 정명화 기자, 서소정 기자, 임혜정 기자, 정병묵 기자 ]

/특별취재팀 digital@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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