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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진단 보안업계 인력난-중]그들은 왜 떠날까?


"동일노동 동일임금이오?"

이름만 대면 알만한 보안업체에서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는 A씨. 그에게 업무 환경이 어떻냐는 질문을 던지자 "같은 업무를 하는데도 임금은 대기업의 70% 밖에 안된다"는 대답이 바로 돌아왔다.

이어지는 그의 얘기는 보안업계가 왜 인력난에 시달리는 지를 한 마디로 설명해주는 듯했다. A씨는 "업체에 따라 사정은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 연봉이 1천800만원에서 2천 만원 사이"라면서 "기회만 된다면 조금이라도 나은 처우를 해주는 곳으로 옮기겠다"고 잘라 말했다.

이 같은 사례는 비단 A씨만의 문제는 아니다.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이 키워드로 자리잡은 지 오래됐다는 것이 보안업계 종사자들의 일관된 주장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같은 사안을 놓고도 서로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다는 것이다.

국내 중견 보안업체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인재가 없다"고 한탄한다. 중소 보안업체들은 "핵심인력은 대형 시스템통합(SI)업체나 처우가 나은 대기업으로 가버린다"며 "현장에 실무 능력을 갖춘 인력이 없다"는 불평으로 가득차있다.

정작 보안업체 종사자들은 "실력을 키울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해주고 '인재없다'는 말을 하라"고 울분을 토한다. 이렇듯 각 이해 관계자들 간의 시각 차이는 갈수록 커지고 있지만 정부는 이를 해소할 뚜렷한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개발 업무 계속할 인프라가 안 돼 있다"

보안업체에서 5년째 SW를 개발하고 있는 B씨는 "개발 업무를 계속할 인프라가 조성돼 있지 않다"며 "신기술을 학습, 훈련할 기회가 적은 중소기업 업무 환경에서 자아실현의 꿈은 이미 접었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이어 "회사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지 못한 개발자는 결국 관리자나 다른 분야로 눈을 돌리게 된다"고 설명했다.

얼마 전 보안업체에 입사한 C씨는 "아직 수습이지만 야근은 물론 주말근무가 습관화돼있다"며 "막상 입사하고 보니 개발자에 대한 처우가 실망스럽기 그지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경력도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는 데다 다른 직군에 비해 승진이 더디다는 선배들의 한탄을 들으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고 했다.

보안업계의 근무환경이 열악한 것은 영세한 기업들이 대부분인 구조적 한계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2006년 11월 한국정보보호진흥원과 한국정보보호산업협회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국내 정보보호기업중 거래소에 상장된 기업은 3개사(1.8%), 코스닥 상장 기업은 8개사(4.9%)에 불과했다.

반면 152개 업체(93.3%)가 비상장기업인 것으로 조사됐다. 또 비상장된 국내 보안업체들의 평균 자본금은 14억 원 수준으로 자본 구조 자체가 척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자본금 10억원 미만 기업이 95개사로 전체의 60%를 웃돌았다. 반면 보안업계에서 자본금 100억 원 이상인 대기업은 4개사(2.5%)에 불과했다. 수적으로는 세계 최고 수준의 보안 강국이지만 한거풀만 벗겨보면 '보안강국 코리아'란 구호 자체가 '빛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자본금이 빈약한 보안업체일수록 근무환경이 열악할 수밖에 없다. 평균 임금 수준도 낮을 뿐더러 인력개발과 훈련에 쓸 비용조차 충분치 않다.

한 보안업체 사장은 "실무에 바로 투입해 몸으로 부딪혀가며 배우게 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신입사원들에게 충분한 교육기간을 줄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구직자들에게도 보안업체는 기피 대상으로 꼽힌다. 얼마전 채용공고를 낸 어울림정보기술, 잉카인터넷 등의 경우 "채용공고를 낸지 꽤 시일이 지났지만 인력 채용이 쉽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잘못 형성된 시장이 문제

잉카인터넷 유인향 부서장은 "보안시장이 매력적이면 인력이 떠나겠나?"고 반문했다. 그는 "인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더 이상 보안업체가 장밋빛 미래를 보장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고 덧붙였다. 실력있는 인재가 그 가치를 인정받고 능력을 키울 수 있는 환경만 조성된다면 떠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안철수연구소 강은성 상무는 "보안시장 자체가 저가로 형성돼 있고, 업체간 출혈 경쟁이 심하다"며 인력난의 원인은 보안시장 자체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제품 개발 시스템 지원이 안된 회사들이 대부분이고 그나마 있는 보안업체 역시 SW개발보다는 용역이나 SI에 의존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면서 "기업이 실력 있는 인재를 뽑더라도 영업이익이 적어 유지가 안된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보안 시장이 구조적인 한계를 갖게 된 연원을 따지고 들어가면 시장 형성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국내에 보안 시장이 본격 형성된 것은 벤처 창업 붐이 최고조에 달했던 1990년대 말이다.

당시 보안시장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으로 너도나도 뛰어들면서 시장은 금방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실제로 국내 보안업체의 설립연도별 현황을 살펴보면 1999년부터 2001년까지 설립된 기업이 76개사로 전체의 47.5%에 달한다.

이처럼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보안업체들은 살아남기 위해 가격경쟁으로 치달았고, 제품보다는 영업력에 승부수를 띄웠다. 이에 따라 보안시장은 곧바로 "인건비 따먹기" 시장으로 돌변했다. 또 신시장으로 주목받던 보안컨설팅 분야는 제품을 팔기 위한 전초전으로 전락해 버렸다.

저가경쟁으로 '제 살 깎아먹기'를 거듭한 보안업체는 매출 부진으로 사업을 접거나 간신히 현상유지를 했다. 심지어 자금난을 타개하기 위해 보안과는 전혀 관계없는 사업에 눈을 돌리는 기업도 생겨났다.

결국 각 보안업체는 R&D 투자를 늘리지 못하고, 제품 개발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이는 다시 업체에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개발비용이 부족한 보안업체는 인력비가 싼 신입사원 위주로 채용했다. 그러다보니 고급 개발 인력은 갈 곳을 잃었다. 쓸만한 인재들이 자리를 떠나면서 업계 전반이 인력난에 허덕이게 됐다.

보안업체에 종사하고 있다는 한 엔지니어는 "2000년 대 초반 고급 인력이 포진해있던 해커스랩 붕괴 후, 그 인력들이 다 어디에 있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정부 지원책은 사실상 전무

이처럼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지만 정부에서는 이렇다 할 지원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보통신부 정보보호산업지원팀 강규형 사무관은 "정부에서 정보보호업체만을 대상으로 인력을 양성하는 프로그램은 대학정보통신연구센터(ITRC) 지원 외에 사실상 없다"고 말했다.

ITRC협의회는 현재 전국 대학교에서 IT 관련 40개센터가 운영중인데 이중 정보보호관련 센터는 5곳에 불과하다. 이 센터들에 연간 8억원 내외의 지원금을 제공하는 것이 사실상 정부 지원책의 전부다.

강 사무관은 "대학 IT전공역량 강화(NEXT) 사업 등 IT 전반에 해당하는 인력 지원책은 있지만 정보보호업체를 대상으로 한 지원책은 마련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정보통신연구진흥원 염흥열 PM은 "그나마 대학교를 중심으로 초·중급자를 위한 지원책은 있지만 정보보호업체 재직자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은 없다"고 밝혔다.

보안업계 관계자들도 정부의 지원 미비에 대해 안타까운 심정을 감추지 않았다. 가뜩이나 설 곳을 잃어가는 보안업체들로선 기댈 언덕조차 없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뉴테크웨이브 김재명 사장은 "정부가 나서서 중소보안업체 인력양성 프로그램을 지원한다면 도움이 되겠지만 현재는 거의 전무한 상태"라며 안타까운 심정을 밝혔다. 정보보호산업협회 박준오 차장 역시 "지금처럼 정부가 인력난을 방관만 하고 있다면 머지 않아 '보안강국 코리아'는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서소정기자 ssj6@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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