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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재] 대한민국 게임 산업의 잃어버린 꿈


 

얼마전, 그라비티의 매각 소식은 사람들에게 많은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남겼다.

일본 소프트뱅크 그룹의 그라비티 인수는 한국 게임 산업 사상 가장 아쉬웠던 순간중 하나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이 아쉬움은, 한국 게임 산업에 있어서, 그라비티가 차지했던 의미가 단지 하나의 게임회사가 아니었으며, 라그나로크가 하나의 게임타이틀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욱 컸다.

한국 게임 산업에 있어서, 일본은 세계 게임 시장 규모의 약 4분의 1, 연간 15조원에 이르는 매력적인 시장임과 동시에, 세계 게임 종주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게임의 역사를 매번 새롭게 써왔던 게임 강국이다.

현재에도 소니, 닌텐도, 스퀘어에닉스, 세가, 코나미 등 여러 게임 명문사들이 줄줄이 포진하여 세계 게임 산업의 방향타를 잡고 있다고 할 만큼 풍부한 산업경쟁력을 확보 하고 있는 게임 강국이며, 한국으로서는 '게임 강국 코리아'를 달성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도전해야 하는 대상이기도 하다.

일본 온라인 게임 시장의 태동은 이미 시장을 경험한 한국 게임 산업으로서는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 게임 산업에서 여러 경쟁력이 모자랐던 한국의 업체로서는, 일본 게임 산업이 아직 확보하지 못했던 온라인 게임 제작 및 운영의 지식과 경험을 이용해서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기회가 된 것이다.

이 시기에 일본 온라인 게임 시장을 평정한 게임이 라그나로크였다. 리니지등 한국의 많은 온라인 게임들이 일본 시장 공략을 선언했지만, 그 어떤 게임도 라그나로크만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코에이의 대항해시대등 일본의 굵직굵직한 역작이 라그나로크를 위협하려 하였지만, 온라인 시장의 선점 효과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라그나로크는 이용자 및 동시접속자를 더욱 증가시키며 수성을 다짐하고 있었다.

라그나로크는 일본내에 100만명이라는 기록적인 회원수를 확보했고, 일본 최대의 동시접속자를 유지하고 있으며, 일본내 최대의 온라인 게임사이며 소프트뱅크 계열인 겅호의 거의 유일하며 절대적인 수익원이기도 했다.

소프트뱅크와 그라비티가 협상을 했다.

협상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Win-Win 협상이 있고, Win-Lose 협상이 있다. 협상의 결과로서, 두 당사자 모두가 승리를 거두는 협상은, 협상을 통해 얻어진 시너지로 지금까지 가질 수 없던 새로운 기회를 얻어내는 경우이다.

하지만, 서로가 잠재적인 경쟁 관계에서 같은 시장을 놓고서 벌어진 협상이라면, 대개 win-lose 협상인 경우가 많다. Win-lose 협상역시 협상의 결과는 타협점인 것 같아서, 그 순간에는 서로가 승리를 주장할 수 있으나, 멀리 그리고 넓게 보면, 누가 승리를 거두었는지 알게 된다.

누구에게 이득이 되는 협상인가?

명백하고 또한 아쉽게도 소프트뱅크쪽의 승리이다.

이번 협상의 결과로 소프트뱅크 그룹의 온라인 게임 사업은 새로운 날개를 얻었고, 그라비티는 그동안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던 꿈을 접어야만 했다.

소프트뱅크가 얻은 날개는 무엇인가?

일본 증시는 지금 소프트뱅크의 마법에 걸려있다.

보수적인 일본인의 투자 성향으로 인해 저평가되었다는 일본 증시에서, 예외적으로 높은 평가를 유지하는 회사들이 있으니 소프트뱅크 계열의 회사들이다.

거기에는 손정의씨에 대한 깊은 믿음이 깔려있다. 실례로, 소프트뱅크의 계열중 하나인 야후 재팬의 경우, 일본의 대표기업 소니의 회사 가치에 맞먹는 약 35조원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 그라비티 매각의 최대 수혜자로 기록될 겅호온라인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라서, 연간 이익 50억 정도에 불과한 회사 가치가 무려 4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물론 마법만은 아니다. 일본의 높은 시장성, 그리고 해당 산업의 높은 성장성이 선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겅호온라인의 매출과 이익 대부분은, 그라비티의 라그나로크에 의해서 발생되고 있다. 더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면, 라그나로크 없는 겅호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얘기할 수 있을만큼, 이 작품 외에 이렇다 할 성공작이 없다.

그만큼 겅호온라인에게 있어서 라그라로크의 의미는 절대적이며, 라그나로크 브랜드와 후속작의 운영은 이 회사의 운명을 결정할 만큼 절실하다.

올 봄 일본 증시에 상장한 겅호 온라인은 1조원 정도에 시작하였다가, 라그나로크의 실적과 가능성을 바탕으로 약 3조원에 근접하였고, 지금은 그라비티의 매각 결정에 따른 사업안정성으로 4조원을 넘나드는 기록적인 회사가치를 실현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라비티가 잃은 꿈은 무엇인가?

그라비티는 나스닥에 직상장한 최초의 한국 게임 회사이다. 자랑스러웠던 만큼 사람들의 기대 또한 컸다.

그러나 상장 후 나스닥의 평가는 냉정했고, 라그나로크 한 타이틀에 사업성을 의존하는 One Title Company라는 지적과 전세계를 대상으로 서비스한다고는 하나 일본, 중국, 대만등 온라인게임의 핵심 시장을 현지 제휴사에게 넘겨주는 사업 한계성의 지적을 받고 있었다.

그라비티는 누구보다 이 점을 잘 인지하고 있었다.

라그나로크 외에 여러 타이틀의 확보를 위해 노력했고, 2005년 5월 그라비티가 작성한 IR 자료를 통해 볼 수 있듯이 라그나로크 후속편을 비롯한 핵심 타이틀을 일본, 중국, 대만등 핵심 시장에 직접 서비스하겠다는 강력한 비전을 제시했다.

라그나로크외의 다른 타이틀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는 불확실한 가정이 될 수 밖에 없겠지만, 이미 수성하고 있는 시장에서 라그나로크 후속편을 지속적으로 선보이겠다는 가정은 많은 확실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라그나로크라는 핵심 브랜드와 일본 시장이라는 핵심 시장의 직접적인 장악은 그라비티로서는 새로운 성장의 꿈을 품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동시에 이러한 그라비티의 계획이 라그나로크에 의존해 왔던 겅호온라인으로서는 회사의 핵심 사업에 대한 위협이기도 했다.

일본내에서 회사 가치 수조원을 넘나드는 또 하나의 겅호온라인이 탄생할 수 있다면, 가장 큰 가능성을 가진 회사가 바로 한국의 그라비티였다.

그러나 그라비티는 이 도전적인 기회를 잡는 대신 안정적인 매각을 선택했고, 그 꿈은 고스란히 소프트뱅크와 겅호온라인의 비전을 넓히는데 사용되어졌다.

이제 일본 시장을 호령하기를 기대했던 한국의 그라비티는 없다.

그라비티는 중력을 의미한다.

하지만, 일본은 좀처럼 그라비티의 중력에 끌려오지 않았다. 오히려, 그 중력을 잃은 채, 일본 최대의 IT기업인 소프트뱅크 그룹에 끌려 들어가고 말았다.

언제쯤, 일본 시장은 한국 게임 산업의 중력에 끌려와 줄 수 있을까?

한국 게임 산업이 중력을 가지려면, 게임 산업에서의 경쟁력이라는 그만한 무게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 무게는 세계 수준의 개발 제작 능력이어야 하며, 세계 시장에 대한 시장 지배력이어야 하며, 또한 세계 게임 산업을 이끌만한 자본력이어야 하다.

아직 한국 게임 산업은 충분한 중력을 발휘할 만큼의 무게가 부족하다. 충분한 중력을 가지지 못하면, 여기 저기 끌려 다닐 수밖에 없다.

착실하게 경쟁력이라는 무게를 늘려가고 충분하게 게임 산업의 중력을 갖출 때, 우리는 다시 우리의 꿈을 찾아 올 수 있는 것이다.

◆필자 소개

구의재 판타그램 이사는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 및 삼성SDS 등에서 사업 전략 업무를 수행하였고, PWC 컨설팅과 IBM BCS에서 사업 전략 부문 컨설턴트로 활동하다가, 현재 판타그램 최고 전략 책임자(CSO)로 일하고 있다.

/구의재 판타그램 CSO euijae@phantagr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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