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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광해군, 난세의 임금은 왜 君이 되었나?


[조이뉴스24 박용근 기자] '역사저널 그날'이 광해군을 재조명한다.

17일 방송되는 KBS1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광해군, 난세의 임금은 왜 君이 되었나!' 편이 전파를 탄다.

1608년 2월 선조, 승하하다. 이에 백성과 신하의 지지를 받으며 "준비된 왕"이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1623년 3월 임금은 폐위당하고, 19년 동안 유배 생활을 하다 제주도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역사는 그를 조선 15대 왕 광해군으로 기록한다.

▲ 극과 극의 평가, 광해군

바른 정치란 균형 잡힌 붕당 정치를 추구하는 것. 광해군은 즉위 초반 남인과 북인, 서인을 고루 등용했다. 전쟁 후유증으로 고통받는 백성들을 치유하기 위해 <동의보감>과 <동국신속삼강행실도> 등을 인쇄, 보급하여 성군의 면모를 보인다.

"내관 이봉정이 답하기를, '지금은 전하께서 공사청에 납시는 때가 없으므로 소신은 종일 태평하게 쉬고 밤에도 편안하게 잠을 자기 때문에 고달픈 일이 없으니 어찌 살이 찌지 않겠습니까'"

- <광해군일기>, 광해 3년 10월

폐허가 된 조선에 변화의 바람을 가져왔던 임금이 공부를 게을리했다? 성군이라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 경연을 소홀히 여긴 광해군. 그의 행적,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 광해군의 업적, 그 실상은?

광해군이 성군이라 평가되는 대표적인 업적, 대동법. 현물로 바치던 세금을 쌀로 대신하여 백성들의 고통을 덜고자 만든 법이다. 그러나 알려진 바와 달리 광해군은 대동법 시행에 소극적이었다.

"당초 나의 생각에도 이는 진실로 시행하기 어려울 것으로 여겼으나, (중략) 예로부터 나라를 소유한 자가 모두 토양의 실정에 맞게 공물(貢物)을 바치게 한 데에는 그 뜻이 있다."

- <광해군일기>, 광해 1년 2월

이 때문에 대동법이 진정 광해군의 업적인가에 대한 논의는 계속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전란으로 무너진 궁궐을 다시 짓는 것이야 마땅한 일. 그렇지만 그의 과도한 궁궐 사랑은 조선을 병들게 했다. 급기야 자기 집 주춧돌을 빼서 기부하는 신하까지 속출했다고.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 광해군, 왜 그랬나?

광해군의 무분별한 궁궐 공사는 전후 추락한 왕실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서였다. 그는 능력 있는 세자였지만 적장자가 아니란 이유로 항상 왕위 유지에 위협을 느꼈다. 출생의 콤플렉스는 형제를 죽이고 어머니를 유폐시키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광해군, 그의 마지막은?

지금껏 알려지지 않았던 광해군의 이면과 그 실상은 6월 17일 일요일 밤 9시 40분 KBS1 '역사저널 그날'에서 확인할 수 있다.

조이뉴스24 박용근기자 pyk18@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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