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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산업을 살리자 - 6] "무형의 가치 인정, SW산업 발전의 인프라"


 

대기업 입찰제한법이 적용되고 최저가 입찰제가 사라지면 SW산업 발전을 위한 구조개혁은 완성되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대기업의 횡포와 저가 경쟁의 악순환외에도 SW 산업 발전을 가로막는 악습들은 곳곳에 똬리를 틀고있다.

정부가 국가계약법에 SW산업을 '지식기반사업'이 명문화한 것은 실로 놀라운 인식의 변화라는 점에서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다. 무형의 가치도 인정하겠다는 정부 차원의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여전히 SW산업은 무형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척박한 땅이다. 공공 프로젝트에서조차 무형의 가치를 결코 인정하지 않는 관행은 여전하다.

대표적인 것들이 ▲ 국가 프로젝트 입찰시 제안서 미보상 ▲ 공무원들의 유지보수 인식 부족 ▲ 과업 변경에 따른 비용 정산 기준 미흡 등이다.

◆ '제안서'는 SW 프로젝트의 알짜 '노하우'

국내 SI업체들은 국가 기관에서 발주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할 때 상당한 인력과 비용을 들여 제안서를 작성한다.

예가 100억원 규모의 프로젝트라면 3억원에서 5억원 정도가 제안서 작성에 투입된다는게 업계 설명. 예가보다 한참 못미치는 가격대에서 수주가 이뤄지는 것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비용이 제안서 작성에 들어가는 셈이다.

그러나 업체들이 공들여 만든 제안서에 대해 국가기관의 보상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소프트웨어진흥법 제 21조에 따르면 사업을 추진하는 국가기관은 낙찰자로 결정되지 아니한자 중 제안서 평가에서 우수한 점수를 받은 자에 대해 작성비 일부를 보상할 수 있도록 돼 있다. 하지만 강제 규정이 아니라는 점 때문인지, 이를 제대로 지키는 기관은 없다.

이 때문에 국가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업체들은 수주에 실패하면 그동안 투입했던 제안서 작성 비용을 고스란히 날려 버려야 한다. 덤핑을 쳐서라도 프로젝트를 수주하려는 관행은 어쩌면 제안서 작성 등에 사용한 돈이 아까워서 인지도 모른다.

한 SI업체 관계자는 "프로젝트 규모가 크면 클수록 제안서는 사실상 최종 설계도와 같다. ITS같은 경우 제안서에 교통량 실태 분석부터 효과분석까지를 요구한다"며 "이는 엄청난 비용과 인력이 소요되는데 프로젝트 낙찰을 받지 못하면 모든 노력과 비용은 그냥 허공으로 날라가는 것"이라며 혀를 찼다.

이 관계자는 또 "지식 산업의 특성을 감안하면 제안서 가치는 인정 받아야 한다. 그러나 국가기관에서는 변화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것들이 공공SW산업의 수익성을 악화시키고 있다"고 성토했다.

제안서가 시스템 설계서 수준에 이르고 있고, 지적 노하우의 알짜 부분인데도 이는 말 그대로 '공짜 서비스' 수준에 머물고 있는 현실인 것이다.

제안서와 관련한 문제는 보상이 안된다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지적재산권 분쟁으로 이어질 소지마저 안고 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공공 프로젝트의 입찰제안요청서(RFP)에는 "제출된 서류는 반환하지 않는다"는 문구가 삽입된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는 제안서에 녹아들어있는 기업들의 지적자산을 고스란히 넘겨주는 꼴이 되는 셈이다.

SW업체 한 관계자는 "상당수 공공기관들이 제출받은 제안서 가운데 맘에 드는 부분을 골라서 최종 수주업체에 넘겨주는 경우가 많다"며 "이렇게 가면 법정 분쟁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과연 제안서 보상은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사안인가.

SW업계 종사자들은 한결같이 "정부의 의지가 문제지 대안은 이미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SI업체 한 관계자는 "프로젝트의 최종 수주가는 예가보다 훨씬 낮기 마련이다. 경쟁이 치열할 경우 차이는 더욱 벌어진다. 예가와 최종 수주가의 차이, 남는 예산으로 제안서 보상을 해주면 된다"고 말했다.

◆ 유지보수 사업은 '애물단지'

SW 비즈니스는 고객 기반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그 다음부터는 유지보수가 매출에서 효자노릇을 하게 되는게 정석이다. SW 사업의 영속성을 보장해주는 기반이기도 하다.

외국 SW 업체들은 이미 유지보수를 전략 사업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투자도 갈수록 늘려가고 있는게 최근의 추세다.

그러나 이것은 외국 SW업체들에게만 해당되는 사안일 뿐이다. 대다수 국내 SW업체들은 국가 공무원들의 인식 부족으로 유지보수를 사업화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공공기관 SW 용역 사업 발주시 무상 유지보수 기간은 1년 정도로 설정하고 계약을 체결하는게 관례다. 다음해부터는 계약 금액의 8%를 공공기관으로부터 받도록 돼 있다.

업체 입장에서 보면 제품을 판매한지 1년이 지나면 예측 가능한 매출을 정기적으로 거둬들일 수 있는 셈이다.

고객 기반이 넓어지면 유지보수가 '알짜배기' 사업으로 대접받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유지보수가 매력적인 사업으로 발전하려면 무형의 서비스에 대한 가치가 인정받는 환경이 존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유지보수는 득보다는 실이 많은 '애물단지'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공공 기관을 상대로 사업을 펼치는 국내 SW업체들의 경우 유지보수는 말 그대로 '애물단지'에 가깝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내 SW업체들은 법으로 정해진 8%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공공기관의 과도한 요구 때문에 손해를 보면서 장사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업체 한 관계자는 "법으로 정해진 유지보수 비율중 SW업체에 돌아오는 몫은 평균 5% 수준이며 최근에는 무상 기간을 1년 이상 요구하는 사례도 많아 사업하기가 점점 힘들어 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공공 기관이 유지보수 비용으로 100원을 지불한다고 가정할 경우 해당 업체에 요구하는 일은 200원어치"라며 "공무원들이 변화하지 않는 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SW업체들을 더욱 속터지게 만드는 것은 외국 업체들과의 차별대우.

공공 기관들이 외국 업체들의 유지보수 정책은 꼬박꼬박 수용하면서도 국내 업체들에게만 과도한 요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SW업체 한 관계자는 "공무원들은 무슨 일이 생기면 면피하기 위해 이름있는 외국 솔루션을 무조건 선호한다. 그러면서 어쩌다 국산 솔루션을 채용하면 대단한 선심을 쓴 것 처럼 온갖 요구를 해대면서 돈은 제대로 주지 않는다. 예산 절감의 공적만 챙기기 바쁜 게 우리나라 공무원들"이라고 개탄했다.

◆ "이렇게 바꿔달라, 저렇게 고쳐달라"

프로젝트를 진행하다보면 발주자로부터 새로운 내용을 추가해달라거나, 바꿔달라는 요구를 받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구축업체에게 새로운 비용 부담으로 다가온다.

한국SW산업협회가 2003년 6월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국가 프로젝트에서 업무가 변경된 규모는 평균 30.7%에 이른다.

그러나 국가 기관에서 업무 내용이 바뀌는 것에 맞게 비용을 다시 정산해 주는 프로세스는 정착되지 않고 있다.

SW사업 대가기준 제14조에 따르면 발주 기관이 계약 내용의 변경 또는 추가 업무의 수행을 요구하는 경우에는 계약 금액을 조정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빠져나갈 구멍이 많아 있으나 마나한 조항으로 전락한지 오래다.

이와 관련 한 관계자는 "과업내용 변경시 사후정산 기준과 지급 절차 등이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보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안서와 과업내용 변경에 따른 보상 문제가 부각되는 까닭은 무형의 가치를 인정하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SW산업을 지식기반사업으로 명문화한 것이 무형의 가치를 인정하는 기본 발판을 마련한 것이라면, 지식기반사업에 대한 중요성을 인정한 인식의 변화를 보여준 것이라면, 이제 구체적인 실천의 의지를 보여줄 때다.

SW는 프로그래머가 코딩 작업을 통해 시스템을 하나 구축했다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SW의 가치는 코딩에 앞서 설계작업에서 시작되며 구축 이후 지속적인 유지보수가 따르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국가가 먼저 SW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 이것이 SW산업을 살리고, 튼튼한 정보화 시스템 구축을 위한 기본 인프라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SW산업 발전을 위한 그 어떤 개혁조치도 밑빠진 독에 물붓기라는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황치규기자 deligh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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