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SW산업을 살리자 - 5] "SW 푸대접, 정부가 주범"


 

SW산업 육성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왜곡될대로 왜곡된 SW산업은 누구의 잘못인가.

지금까지 아이뉴스24는 SW업체의 경쟁력 부실 실태와 시장 왜곡상을 짚어봤다. 그러나 또 한 곳, 반드시 칼날을 들이대야 할 곳이 있다. SW산업 육성을 말로만 떠들었지 SW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는 곳, 바로 정부(법과 제도)다.

◆ 거대한 적자 시장 '공공 프로젝트'

안타까운 일이지만 우리나라 SW 시장에서 자유로운 경쟁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거의 유일한 시장이 공공 시장이다. 기업 시장은 그룹 계열사 출신의 시스템통합(SI) 업체가 각 계열사를 독점하고 있어 규모는 커도 사실상 경쟁이 불가능한 배타적인 시장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 SI 시장 규모는 약 10조원, 2004년에는 10% 성장한 11조원 규모로 예상된다. 이 가운데 공공 SI 시장은 약 3조원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다. 전체 SI시장의 27% 정도가 공공 시장인 셈이다.(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하지만 3조원에 이르는 공공 시장은 업체들에겐 거대한 적자의 원천이다. 유일한 자유경쟁 시장이면서, 덤핑 시장이기 때문이다.

공공 정보화 프로젝트는 대부분 SI업체들이 담당한다. 그런데 SI 업체들이 공공 프로젝트에서 올리고 있는 수익률은 거의 대부분 마이너스다. LGCNS의 경우 1조3천억원의 전체 매출 가운데 2천800여억원을 공공 사업에서 거두고 있지만 공공 사업만 놓고 보면 150억원 정도가 적자다. 공공 프로젝트를 그마나 잘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LGCNS가 이 정도다.

SI업계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유일한 경쟁시장에 과당경쟁이 이루어지다보니 가격 경쟁에 내몰릴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업체간 과당경쟁에서 비롯된 저가 입찰이 적자 양산의 원인이라는 얘기다. '1원 낙찰'이란 말이 낯설지 않은 시장이 바로 공공 정보화 시장이다.

"기업이 계속 존속하기 위해서는 수익도 중요하지만 우선 매출이 지속적으로 발생해야 한다. 유일한 시장이라 할 수 있는 공공시장에 적자를 무릅쓰고 뛰어드는 이유다. 당장 손을 뗀다면 수많은 인력들을 잘라야 하는데, 그럴 수 없는 것 아닌가" SI 업계의 공통된 하소연이다.

또한 "비록 적자가 나더라도 공공 프로젝트는 향후 비즈니스에서 중요한 레퍼런스가 되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한다.

'레퍼런스' 가치 외에는 공공시장의 매력은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공공 시장은 원초적으로 적자 시장일 수 밖에 없는가. 표면적으로는 업계의 과당경쟁이 원인이다. 하지만 업계만 나무랄 일은 아니다.

정부 스스로 소프트웨어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 SW 푸대접, 정부가 앞장서 왔다

정부가 앞장서 SW를 푸대접해왔다는 얘기다. SW 산업과 관련된 우리나라 법과 제도를 보면 이러한 주장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다.

소프트웨어 가치 산출의 기본이 되는 'SW사업대가 기준'은 프로그램 소스의 '본수(소스코드의 라인수)'를 기준으로 한다. SW 가치가 프로그램의 전체 크기에 따라 좌우된다는 것은 SW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비현실적인가를 보여준다.

SW는 똑 같은 기능을 하더라도 얼마든지 프로그램을 줄였다 늘렸다 할 수 있다. 오히려 프로그램 소스를 가능한 간단하게 작성하면서도 원하는 기능을 구현하는 것이 고품질 SW 를 제작하는 능력이다.

여기에 개발자를 단순히 경력연수에 따라 초급, 중급, 고급으로 나누고 그에 따른 노임단가를 차별화하고 있는 것도 계량화의 함정에 빠진 비현실적인 기준으로 꼽힌다.

이러한 비현실적이고 비합리적인 기준이 결국 정보화 예산 수립의 기초 자료로 적용되고 있는 현실이다.

또 공공 프로젝트 업체 선정은 누가 '최저가'를 제안했으냐에 따라 결정돼 왔다.

정보화 프로젝트 업체를 선정할 때 최가를 잣대로 삼아왔다는 것도 예산 절감이라는 미명에 빠져 정부 스스로 정보화 프로젝트의 부실을 초래하고 결국 산업을 죽이는 데 앞장서 왔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소프트웨어는 그 자체로 완제품이란 없다. 그리고 SW의 가치는 정교한 설계와 지속적인 사후 서비스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우리나라 공공 정보화 프로젝트는 기술이나 서비스 능력을 평가하기보다 가격을 중요한 선정 잣대로 삼아왔다. 정부가 '1원 입찰'을 조장해왔다는 평가는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예산은 적절히 사용됐을 때 가치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법과 제도는 적어도 소프트웨어 산업에 있어서는 '깎는 것이 최대의 미덕'인 것이다.

◆ 2004년, SW에 대한 인식 바뀌는 가

2004년은 SW 산업계로서는 주목할 해다. SW산업과 관련된 법과 제도가 근본적으로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가 지난해 12월 발간한 '공공기관 SW 발주체계관련 현행 법제도 조사 및 분석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SW 산업과 관련된 법률만 40개에 이른다. 이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법률이 예산회계법,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국가계약법),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이다.

예산회계법은 정보화 예산 수립과 관련된 것으로 기획예산처가 소관부처다. 국가계약법은 공공 프로젝트의 입찰 방식을 규정한 것으로 재정경제부가 소관부처이며 소프트웨어사업진흥법은 SW산업 육성을 위한 법률로 소프트웨어사업대가 기준이 이 법에 규정돼 있다. 정보통신부가 소관부처다.

그런데 지난해말부터 위 법과 관련돼, SW산업에 영향을 미칠 몇가지 개정안이 마련됐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지난해 12월 개정된 국가계약법 시행령이다. 국가계약법 시행령에 지식기반사업의 계약방법(43조의 2) 조항이 신설된 것이다.

이 조항은 '정보과학기술 등…지식기반 사업에 대한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에는…협상에 의한 계약체결방법을 우선 적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협상에 의한 계약체결 방식은 업체 선정에 있어 가격보다는 기술을 중요하게 평가하는 방식이다.

그동안 정보화 프로젝트는 단순 가격입찰 방식이나 적격심사낙찰제, 2단계 경쟁입찰 방식이 적용됐으나 모두 최종 선정기준은 최저가 낙찰이었다.

하지만 협상에 의한 계약체결 방식이 우선 적용되도록 함으로써 SW의 가치를 가격이 아닌 기술로 평가하도록 하는 법적 장치를 마련한 셈이다.

무엇보다 '지식기반사업'이란 것이 법적으로 명시됐고, 여기에 SW산업을 포함시켰다는 점에서 SW에 대한 혁명적인 인식변화로 평가할 만하다.

지식기반사업에는 소프트웨어사업을 포함해 정보화 사업, 엔지니어링, 산업디자인, 온라인디지털콘텐츠사업 등이 규정돼 있다.

재정경제부는 국가계약법 시행령 개정과 함께 하위기준(협상에 의한 계약체결기준)을 고시해, 가격과 기술평가 점수 항목과 방식을 정했다.

평가항목 및 배점 기준은 기술능력 평가를 80, 입찰 가격 평가를 20으로 한다. 입찰 가격평가도 추정가의 60% 미만의 덤핑 입찰은 근본적으로 차단했다. 추정가의 60% 미만으로 제안할 경우 60% 가격과 동일한 점수를 부여토록 한 것이다. 추정가 100억원 프로젝트에 60억원을 제시한 업체와 1원을 제안한 업체는 결국 같은 점수를 받게 된다는 얘기다.

소프트웨어 산업을 지식기반사업으로 명시했다는 점과, 덤핑입찰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법안이다.

국가계약법 시행령 개정과 함께 주목되는 것이 SW산업진흥법 가운데 ‘SW사업대가 기준’의 개정 움직임이다.

조만간 정통부가 개정안을 고시할 예정인데, 소프트웨어개발비 대가기준을 이전의 '본수방식'에서 '기능점수' 방식으로 바꾸는 작업이다.

'본수방식'이란 개발자 관점에서 대가를 산정하는 것. 프로그래머가 입력이나 조회, 출력 등을 실행하는 단위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다.

반면 '기능점수방식'은 사용자(발주자)에게 제공하는 기능을 논리적으로 식별해서 대가기준을 잡는 것. ISO/IEC 141143FSM 등 국제적인 추세다.

예를 들어 게시판 프로그램과 회계관리 프로그램을 비교해보면, 예전 방식(본수방식)으로 했을 경우 스텝수(독립적으로 컴파일, 실행할 수 있는 단위)가 410으로 같게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기능점수' 방식을 쓰면 각 기능의 유형을 구분해서 복잡도에 따라 가중치를 적용하기 때문에 달라진다. 게시판의 경우 3이라면, 회계관리 프로그램은 12가 나와 규모가 3배 이상 차이가 나게 되는 것.

정통부는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소프트웨어 개발비를 책정할 때 '기능점수' 방식을 적용할 계획이다.

소프트웨어 대가기준의 변경은 정보화 예산 수립의 기본이 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좀 더 합리적인 대가산정 모델이 마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대가기준 변경과 함께 공공 프로젝트에 대기업의 입찰을 제한하는 SW산업진흥법 시행령 개정안도 준비중이어서 이래저래 올해 우리나라 SW 산업, 특히 공공 시장을 둘러싼 시장에는 일대 변화의 바람이 예고되고 있다.

◆ 지식기반사업, 아직도 먼길

소프트웨어가 지식기반사업으로 '법적 대우'를 받게 됐다는 것은 정말 획기적인 일이다. 소프트웨어는 일반 상품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인정받는 것은 오래전부터 업계의 숙원이었다.

소프트웨어를 하드웨어와 동일시하거나, 하드웨어의 부속품쯤으로 여기는 인식은 정부 공공기관도 예외는 아니었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는 분명 다르다. 특히 상품으로써 소프트웨어는 가치 평가에 있어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방식이 필요하다.

미국에서 발생했던 '9.11 테러' 이후 하드웨어 업체와 소프트웨어 업체는 고객의 파괴된 시스템의 복구에 있어 희비가 엇갈렸다. 하드웨어 업체들은 장비를 다시 팔수 있었지만, 소프트웨어 업체들은 고스란히 다시 설치해줘야 했다.

PC나 서버 등 하드웨어 구매는 고객이 돈을 주고 소유권 일체를 넘겨받는 것이지만, 소프트웨어는 일정기간 사용권리를 얻은 것(라이선스)이기 때문이다.

고객입장에서는 하드웨어 장비는 내 것이 파괴된 것이므로 다시 구매해야 했지만, 소프트웨어는 사용권이 그대로 남아 있으므로 재설치를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소프트웨어는 상품이 아니라 '서비스'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이 때문에 소프트웨어는 제대로 설치하고 제대로 사후서비스가 보장됐을 때 진정한 가치를 얻는다.

이런 점에서 국가계약법에 소프트웨어를 지식기반사업으로 명시했다는 점은 괄목할 만한 인식의 변화로 평가된다.

그러나 지식기반사업의 명시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시작일 뿐이다. 지식기반사업으로 합당한 대우를 받으려면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줄줄이 남아있다.

지식기반사업으로서 SW의 가치는 서비스의 측면에서 평가받아야 한다. 그러자면 소프트웨어 가치는 제품 그 자체가 아니라 그에 앞서 설계 작업과 사후 서비스 부분에서 더 많은 가치가 인정돼야 한다.

설계작업에 해당하는 '제안서'에 대한 보상과, 사업내용의 변경에 따른 보상이 반드시 보장돼야 한다. 또한 사후서비스(유지보수료)의 요율도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 지식기반사업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기본 전제가 되는 것들이다.

개정된 법과 제도의 엄격한 관리 감독을 위한 관련 법개정도 뒤따라야 한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정부가 나서서 SW업체들의 테스트 베드를 자처하고 있다. 공공 프로젝트를 통해 실력을 쌓아 세계 시장으로 진출하도록 정부가 정책적으로 지원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서야 겨우 소프트웨어가 무엇인지를 인식한 정도다.

정부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서 소프트웨어 산업 육성을 아무리 강조해봐야 '공염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제 시작이다.

김상범기자 ssanba@inews24.com






alert

댓글 쓰기 제목 [SW산업을 살리자 - 5] "SW 푸대접, 정부가 주범"

댓글-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로딩중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