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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대기업 입찰제한인가 - 상] 구겨진 거울에 비친 SW 생태계의 현실


 

"우리나라에서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성공하겠다는 꿈은 접어야 한다."

SW 산업계에 팽배해 있는 자괴의 넋두리다.

소프트웨어가 제대로 상품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고, 서비스로서의 SW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하는 상황이다. 부존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 현실에서 소프트웨어 산업이 미래 국가산업의 대들보로 떠받들여진 지 10여년이 훌쩍 지났다. 외형상으로도 14조원이 넘는 거대한 시장으로 컸지만 실상은 거대한 적자구조의 재생산이 거듭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러한 가운데 정보통신부가 SW 산업 발전을 위한 정책 하나를 마련했다. 바로 국가 공공 프로젝트에 대기업의 참여를 일정부분 제한하겠다는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 시행령 개정안이다. 일정 규모의 이하의 공공프로젝트에는 중소기업만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중소 SW업계 육성 정책이다.

과연 이번 입찰제한법이 국내 SW 산업의 왜곡된 현실을 타파할 수 있을까. 아이뉴스24는 이번 정책이 왜곡될 대로 왜곡된 우리나라 SW 산업의 현실을 타개할 의미있는 첫 걸음이란 측면에서 주목하며, 3회에 걸쳐 이번 입찰제한법이 등장하게 된 배경과 제한법이 담고 있는 내용과 취지, 이해 당사자들간의 첨예한 입장 차이를 심층진단하는 기획시리즈를 마련했다.[편집자 주]

◆거대한 적자산업 '소프트웨어'

소프트웨어 기업들의 협의체인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가 출범한 것이 1988년이다. SW가 산업으로서 본격화한 시점을 이때로 본다면 15년 쯤 흐른 셈이다.

당시 63개 회원사로 출범한 한국SW산업협회는 2003년 4월 현재 회원사 1천200개의 거대 단체로 성장했다. 회원사는 아니지만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에 SW사업자로 신고된 기업은 2002년말 현재 5천482개사에 이른다. 괄목한 만한 성장이다.

SW 산업의 전체 규모도 매년 30%대의 성장을 거듭해 왔다. 한국SW산업협회의 자료에 따르면 2002년 말 현재 우리나라 SW 시장 규모는 14조3천억원에 이르렀다. 올해에는 18조원을 넘어설 것이란 전망이다.

<표 1> 국내 SW산업의 시장 규모 및 연간 성장률(단위: 백만원)

구분 1995 1996 1997 1998 1999 2000 2001 2002 2003(E)
매출액 2,587,743 3,593,808 5,004,755 5,337,070 7,054,558 8,940,052 10,945,217 14,298,591 18,015,350
증가율 N/A 43 35 7 32 27 22 31 25

이렇듯 기업의 수나 전체 시장 규모는 매년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지만, 이 거대한 시장에서 성공한 기업을 꼽기가 쉽지 않다. 규모의 크고 작고를 떠나 광범위한 적자 구조가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18조원에 이르는 시장에서 5천개가 넘는 기업들이 비즈니스를 펼치고 있지만 성공한 기업을 찾아볼 수 없는 현실. 10년 넘은 최고참 SW 기업도 기껏해야 매출 300억원이 한계점인 외화내빈의 상황이다.

<표 2> 부문별 SW 산업 규모(단위 : 백만원, %)

구분 SI SW수탁개발업 패키지SW개발공급업 SW관련서비스업 합계
시장 규모 9,107,335 948,046 1,872,572 2,370,738 14,298,691
비율 63.7 6.6 13.1 16.6 100.0

"SW로 성공하겠다는 꿈은 접어야 하는가"라는 자괴감은 이런 현실에서 비롯된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국내 시장의 기본적인 왜소함, 선진 외국계 기업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기술력, SW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는 시장의 인식 등 여러가지 이유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외부적 요인이 SW 산업발전의 걸림돌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문제의 심각성은 SW 산업 내부요인이 더 크다는 지적이다. 그것은 현재 SI를 중심으로 SW가 유통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문제다.

SW 생태계의 원활한 흐름을 담당할 매개체로서 SI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제역할을 못하는 것은 물론, 오히려 SW 산업 발전을 가로막는 거대한 필요악으로 커져버린 것을 아닐까.

18조원을 바라보는 우리나라 SW 시장에서 63.7%인 9조1천억원 가량이 SI 시장이다.

<표 3> 주력사업별 SW사업자수(단위: 개, %)

구분 회사수 비율 누적비율
시스템통합사업 2,777 50.7 50.7
SW수탁개발업 495 9.0 59.7
패키지SW개발 및 공급업 960 17.5 77.2
SW관련서비스업 1,250 22.8 100.0
합계 5,482 100.0

◆"SW 업체는 무얼 먹고 사나"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의 모든 축은 SI를 중심으로 운영된다. SI업체를 앞세우지 않고는 SW를 만들어 팔아먹을 수 없는 구조라는 얘기다.

하지만 그 정도가 심하다. 거대한 몇 개 SI 업체가 SW 유통의 거의 모든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

중견 SW 업체인 A사는 최근 행자부 산하 공공기관 프로젝트에서 기가 막힌 경험을 했다. 사실상 프로젝트의 영업 및 제안 작업, 견적 작업까지 모두 마친 A사는 40억원에 이르는 프로젝트의 규모 때문에 해당 기관의 요구대로 대형 SI업체를 주사업자로 내세워야 했다.

전체 프로젝트의 제안 작업이나 견적 작업을 통해, 또 그동안 그 기관의 많은 프로젝트를 독자적으로 수행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충분히 소화할 수 있었다고 믿었지만 기관의 요구도 있고 어차피 소프트웨어 뿐 아니라 각종 하드웨어 구축도 필요한 사업이었기 때문에 PM 역할을 맡을 SI 업체가 필요한 점도 있었다.

그런데 SI업체가 주사업자로 들어선 이후 뜻 밖의 일이 생겼다. A사가 애초 예상했던 마진이 크게 줄어든 것이다.

전체 프로젝트 예산이야 정해져 있는 것인데, 그 중에서 자신들이 얻을 수 있는 수익이 줄었다는 점이 의아했던 A사는 나중에서야 그 이유가 SI 업체가 새로 견적작업을 하면서 벌어졌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 SI업체는 프로젝트에 실질적으로 참여하지도 않는 자사 직원들을 외국 현장 견학에 대거 포함시켰고, 자사 임원 출신이 설립한 회사의 장비를 채택하면서 거기서 발생하는 추가 비용부분을 모두 A사의 마진에서 보충해 버린 것이었다.

A사 관계자는 "강력히 항의해 결국 해외 견학인원을 줄이는 선에서 마무리가 됐지만 솔직히 후환이 두려운 것이 사실"이라며 "하지만 이런 일은 놀랄만한 일도 아니다"라며 개탄했다.

A사는 꽤 용감한 편이었다. 솔루션 업체들은 뻔히 당하는 줄 알면서도 '후환'이 두려워 입도 벙긋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최근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자료관시스템 구축 프로젝트는 왜 솔루션 업체들이 헐값 공급을 할 수 밖에 없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자료관 시스템은 정부의 인증을 받은 솔루션만 참여할 수 있다. 그런데 서울시가 산하 구청을 포함해 통합발주를 계획하면서 결국 SI 업체가 주사업자로 참여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서울시의 입찰제안요청서(RFP)가 나오기도 전에 SI업체들은 솔루션 업체들에 헐값 공급을 요구하고 나섰다. 다른 지차제 프로젝트에 대비해 서울시만한 레퍼런스가 어디 있겠느냐는 게 SI업체의 논리 아닌 논리였다.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기도 하다.

◆"PM 역할이라도 제대로 한다면..."

"울며 겨자먹기로 출혈 공급을 감수한다 하더라도 SI업체가 실제 PM으로서 충분한 역할만 해준다면 좋겠다."

중소 SW업체들의 하소연은 헐값 공급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프로젝트 수주를 위한 영업부터 제안작업, 실제 구축작업, 교육 및 사후서비스까지 사실상 모든 프로젝트를 솔루션 업체가 도맡아 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 때 SI업체는 단지 고객을 대신해 중소업체들 관리자 노릇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솔루션 업체 S사는 최근 공공 프로젝트 하나를 대형 SI업체와 함께 진행했다. 레퍼런스 가치가 큰 매력적인 프로젝트였지만 구축을 끝낸 뒤 만난 이 회사 임원 A씨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제값을 받지 못해 인건비조차 못건진 것은 물론, SI업체가 해야 할 일까지 덤으로 뒤집어 쓰는 바람에 이래저래 이중고를 겪었기 때문이다.

"프로젝트가 나오면 일단 제안서 작성을 하게 됩니다. 구축시 과도한 업무를 요구하는 것은 물론 자신들의 관리 잘못으로 시스템에 문제가 생겨도 솔루션 업체에 떠넘기는 경우가 많아요."

S사는 이번 프로젝트에서 1천만원도 못받고 제품을 넘겼다. 제안서 작성은 물론 전담 직원 1명을 2주간 상주시켰다. 물론 인력 투입에 대한 비용은 받지 못했다.

애초 제품 판매한 뒤 SI업체 관계자에게 교육만 시켜주면 되는 것이었지만 무보수로 구축 업무까지 대신한 셈이다.

A씨는 "2주간 전담 인력을 투입해 들어간 비용은 적게 잡아 1인당 300만원 정도"라며 "중소 업체 입장에서는 적지 않은 금액"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또 다른 솔루션업체 B사는 6개월 동안 프로젝트에 인력을 투입하고도 수금이 안돼 도산 위기에 빠졌던 아찔한 경험을 전해준다.

B사가 도산 위기에 처한 원인은 납기 내에 프로젝트를 마치지 못했고 이 때문에 수금을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납기 내 시스템 구축이 안된 이유는 고객의 요구사항이 프로젝트 수행중에 수시로 바뀌면서 어쩔 수 없이 지연된 것이었다.

고객의 요구가 바뀌거나 추가됨으로써 납기가 지연된 것을 PM인 SI업체가 제대로 방어는 못해 줄 망정, 납기 지연에 대한 패널티를 하청업체에만 떠넘기려고 했다는 얘기다.

"애초 고객과 계약과정에서 이를 분명하게 하지 못한 책임은 분명 주사업자인 SI에 있는 것인데, 구두로만 대충 넘어간 후 문제가 생기니까 그 책임을 중소업체에 떠넘기기만 하면 어쩌란 말인가."

B사 관계자는 한동안 울분을 터뜨리고 난 후 의례 그렇다는 듯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얼굴마담이라도 제대로 해야 할 것 아니냐."

중소 업체들이 SI업체에 퍼붓는 한결같은 울분이다.

◆너무도 심각한 독점 현상

대형 SI업체와 중소 SW업체간의 이러한 수탈 구조는 국내 SW산업의 기형적인 구조에서 비롯된다.

소프트웨어 산업을 포함한 국내 IT서비스 시장의 현실은 한마디로 대형 SI기업의 완전 독점 상황이다.

특히 매출규모 1∼3위의 대형 SI업체가 전체 시장의 절반 이상을 독차지하고 있다.

더구나 11대 SI업체의 그룹 계열사 의존도는 53%에 달한다. 시장을 독점하고 있으면서도 체질적으로 허약한 구조라는 얘기다.

<표 4> 주요 SI 기업의 내부 거래 및 그룹 의존도

순위 회사명 내부거래 매출액(2001년도) 내부거래 매출액(2002년도) 그룹의존도(2001년도) 그룹의존도(2002년도)
1 삼성SDS 8,376억원 9,585억원 63.43% 61.79%
2 LG CNS 4,093억원 5,135억원 44.00% 44.20%
3 SK C&C 5,558억원 6,543억원 73.68% 74%
4 한전KDN 2,270억원 2,526억원 56.40% 73.10%
5 포스데이타 1,690억원 1,924억원 55.98% 54.33%
6 신세계I&C 714억원 1,014억원 56.40% 55.50%
7 CJ시스템즈 736억원 560억원 74.49% 84.46%
8 현대정보기술 1,022억원 543억원 22.64% 12.40%
9 동양시스템즈 444억원 495억원 43.23% 40.15%
10 한진정보통신 431억원 416억원 47.78% 41.60%
11 코오롱정보통신 327억원 311억원 11.10% 12.41%
합계 25,661억원 29,052억원 52.65% 53%

공공 프로젝트만 보면 독점 현상은 더 심하다. 한국전산원의 정보화 사업(2000~2002년) 가운데 국내 공공 SI 프로젝트의 65%(수주액기준)를 삼성SDS와 LGCNS 두 회사가 독식하고 있다. 삼성SDS가 43.6%, LG CNS가 21.4%를 차지한 것.

이 같은 사실은 상위 10개 기업이 연방조달 IT 물량중 41.2%를 나눠갖고, 소기업이 22.3%를 차지하는 미국과 전혀 다르다. 대형 SI업체들이 그룹 내 매출 뿐 아니라 공공프로젝트도 독점하고 있는 것.

사업수행능력이 뛰어나서 공공프로젝트를 독점한다면 크게 문제될 게 없다. 하지만 그룹사 프로젝트에서 이익을 보전받은 몇 개 기업이 최저가 낙찰 관행을 통해 공공시장 마저 독점해 가는 구조라면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주 계약자인 SI업체가 나름의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취할 수 있는 방법은 하도급 업체나 중소 솔루션 업체에 부담을 떠 넘기는 방법 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이경원 박사는 '한국의 IT 서비스 산업 이슈 분석'이란 리포트를 통해 "매출규모 1∼3위의 대형 SI업체들의 전체 시장점유율이 50%가 넘는 대기업 집중현상과, 그들 매출액 중 40∼70%를 차지하는 그룹 내 매출에 대한 높은 비중이 IT 서비스 공급사에 도덕적 해이를 유발해 경쟁력을 악화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이 박사는 또 "SI 업체가 자발적으로 그룹 내에서 발생하는 수요를 줄이기 어렵기 때문에 방법론을 도출하기 위한 IT 서비스 산업에 대한 산업조직적 접근에 대해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왜곡 파괴의 첫 걸음 '입찰 제한법'

'모든 것은 SI로 통한다'는 시장 구조, 특히 몇개 재벌기업 계열의 SI 업체가 전체 시장의 절반 이상을 독점하는 시장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나온 것이 '대기업 입찰제한법'이다.

아무로 열심히 노력해도 결국 SI 업체의 호불호에 의해 생사가 결정날 수 밖에 없는 구조라면 결코 중소 SW업체들은 성공을 보장받을 수 없다.

자신들의 노력이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성패의 열쇠는 다른 곳에 있다면 결국 엉뚱한 부분의 능력만이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 스스로 절대 성장할 수 없는 구조, 이 상황에서 누가 과연 SW 사업에 뛰어들 것인가.

대기업 입찰제한법이 작지만 의미있는 첫 걸음이라는 평가는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김상범 김현아 황치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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