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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정부는 왜 공개 SW로 못하나"...고현진 SW진흥원장


 

지난 6월4일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 신임원장으로 고현진(50) 한국마이크로소프트 지사장이 선임됐을 때 일부에서는 삐딱한 시선을 감추지 않았다.

개연성있는 지적이긴 했지만, 고 원장 취임 넉달여가 지난 지금, 이러한 우려는 일단 기우였다는 평가를 내려야 할 듯 하다.

지금까지 상황으로만 보면 "MS 출신이기 때문에 오히려 MS가 역차별을 받을 것"이라는 MS 내부의 걱정이 더 정확한 진단일 듯 싶다.

'공개 소프트웨어 전도사'

고현진 원장은 스스로를 이렇게 부를 정도로 공개 SW 지원정책에 모든 것을 걸다시피 하고 있다.

"정부가 국가 표준을 정해 강력한 의지로 밀어부쳐야 한다"는 주장은 그가 늘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는 얘기다. 중국이 정부, 공공기관의 모든 소프트웨어를 자국산 SW로만 쓰라고 했듯, 우리도 그렇게 강력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지난 27일 정보통신부가 추진하는 공공기관 공개소프트웨어 전환 시범사업의 대상 기관이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KIPA), 정보통신산업협회, 춘천시, 강원대학교로 최종 확정됐다. 이제 본격적인 정부의 시범사업이 시작된 셈이다. 물론 이러한 지원 정책의 중심에 고현진 원장이 있다.

고 원장은 "무엇보다 중점을 두는 부분은 시장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며 공개 SW 육성을 위해 시장 창출 부분에 가장 큰 무게를 싣고 있다. 이후 기술개발, 인력 양성 등을 단계적, 지속적으로 추진할 뜻도 강조했다.

고 원장과 오랜 시간 얘기를 나눴다.

◆왜 공개 SW인가

고 원장이 공개 SW 지원정책에 매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연 공개 소프트웨어 육성 정책이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산업 발전을 위한 유일한 희망인가.

"두 가지 큰 이유가 있다. 우선 현재의 IT 시장 판세는 더 이상 우리 SW업체들이 뒤엎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운영체제는 윈도, DB는 오라클이란 판세를 뒤엎을 수 있겠는가. 어렵다고 본다. 그렇다면 답은 새로운 판을 만들고 그 새로운 판에서 시장 주도권을 잡아햐 하는 것이다."

고 원장의 대답은 분명하다.

그가 말하는 '새로운 판'이란 바로 공개 소프트웨어 시장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리눅스 플랫폼 시장을 말한다.

윈도 플랫폼 기반의 현 SW 산업에서 국내 SW 업체들의 경쟁력이 세계적 수준으로 올라가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러자면 새로운 리눅스 플랫폼 시장에서 승부를 걸어보자는 얘기다.

공개 SW에 천착하는 또 다른 이유는 '대안'일 수 있다는 것이다. IT 시장이 점차 몇몇 기업의 독점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을 견제할 대안으로 공개 SW만한 무기가 없다는 뜻이다.

여기서 공개 SW 지원정책의 궁극적인 목표 하나가 발견된다. 바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대표 기업 한두개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고 원장은 "현재 우리나라는 소프트웨어 지원 정책을 펼치려 해도 솔직히 정책을 펼 만한 대상이 없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소프트웨어 기업이라는 한글과컴퓨터, 안철수연구소도 기껏해야 매출 200억원대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산업의 기반은 취약하다는 뚯이다.

지난 9월16일 취임 1백일을 맞아 가진 기자회견에서 고 원장은 기본적인 사업뱡향과 관련, "정부기관이 창업을 지원하는 것은 맞지 않다"며 "창업 이후 기업을 대상으로 각 성장단계별로 선택적이고 전문화된 지원정책을 펼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또 해외진출 지원정책도 내수 시장에서 기반을 다진 대표업체들을 발굴해 체계적인 수출지원을 펼칠 것이라고 말했다.

SW 산업 지원정책의 기반이 '선택과 집중'이란 점을 분명히 한 것 이다. 이런 차원에서 공개 SW 시장을 육성하는 목표 역시 "이 시장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거대 기업 한 두개는 나와야 한다"는 말 속에 숨어있다.

◆공개 SW, 경쟁력은 있나

결국 공개 소프트웨어 시장을 새로 만들고 거기서 경쟁력있는 국산 소프트웨어 업체를 육성해보겠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공개 SW 시장에서 우리의 경쟁력은 있는가.

IBM이나 오라클, 썬 같은 쟁쟁한 기업들도 '리눅스' 기반의 애플리케이션 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상황이다.

고 원장은 "그들도 역시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일 뿐이다. 상대적으로 충분히 해 볼 만한 싸움터"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말을 꺼냈다. "미국이나 중국에서 우수한 인력 4천500만명을 엄선해 우리나라 4천500만 국민과 대결을 한다면 분야를 막론하고 백전백패 할 것이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 사람들 가운데 무작위로 4천500만명을 뽑아 우리 국민 전체와 붙는다면 백전백승 할 수 있다."

전반적으로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강조한 말이지만, 그 말 속에는 조직적 역량으로 승부한다면 승산이 충분히 있다는 뜻이 들어 있다. 그리고 그 조직적 역량의 리더십을 정부가 발휘한다면 가능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산업의 구조적인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정부조차 '저가 입찰'이 기본이고, 소프트웨어 프로젝트는 SI 업체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는 저가 입찰의 희생양이 되고 있지 않은가.

이런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제 아무리 '새로운 판'을 만든다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일 터.

이 부분에서 고 원장 역시 뾰족한 해답 대신 답답함을 토했다.

"그렇다. 답답한 일이다. 그런 점을 고쳐보자고 정통부에서 나름대로 고민해 제도를 만들고 정책을 고쳐도 실제 받아들여야 할 다른 부처들이 들은 척도 안한다면 제대로 될 턱이 없다."

이 때문에 고 원장은 강력한 리더십을 갖춘 국가 CIO가 필요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국가의 표준을 정하고 이를 강력히 밀어부칠 수 있는 리더십을 갖춘 국가 CIO가 필요하다. 그게 정통부가 됐든 다른 곳이 됐든 강력한 리더십을 통해 부처간 밥그릇 싸움을 이제는 끝내야 한다."

◆공개 SW 인가, 공개 플랫폼인가

이 대목에서 정리할 것이 있다. '공개 소프트웨어 지원 정책'이란 말의 모순이다.

공개 소프트웨어는 말 그대로 '소스가 공개된', 누구나 '공짜로' 쓸 수 있는 소프트웨어다.

그렇다면 공개 소프트웨어 지원정책을 통해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산업을 키우고, 글로벌 기업을 키우겠다는 얘기는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고 원장의 설명은 이렇다. "모든 소프트웨어를 공짜로 쓰자는 뜻이 아니다. 그렇다면 산업 정책이란 게 별 의미가 없는 것이다. 말 속에서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실제로는 리눅스 기반의 국산 소프트웨어를 육성한다는 의미가 크다. 광의의 의미로 공개 소프트웨어란 말을 쓰고 있는 것이다."

결국 '공개 플랫폼 지원 정책'이란 뜻이다. 그 핵심에는 물론 리눅스가 있다.

◆ "전자정부도 공개 SW로 가자"

정부의 정책 의지가 얼마나 되느냐도 중요한 대목이다. 업계에선 종종 정부의 정책 의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갖는 버릇이 생겼다.

고 원장이 소프트웨어진흥원을 책임지고 있지만, 그 역시 상위 부처인 정통부의 의지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고 원장은 "정통부가 단기 실적에 급급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이해는 가면서도 정말 아쉬운 일이다. 공개 SW 지원 정책은 적어도 3년 이후에나 성과를 볼 수 있는 장기 프로젝트다. 그런 점에서 상대적으로 뒷전에 밀려 있는 분위기"라고 평가했다.

그는 또 "통신 정책 위주로 가고 있는데 장기적으로 봤을 때 글로벌 제품으로 키워 수출할 수 있는 고부가가가치 있는 상품은 소프트웨어"라고 잘라 말했다.

정통부는 2007년까지 공개 SW 지원을 위해 230억원 정도를 투자할 계획이다. 고 원장은 이것도 '양에 차지 않는다'는 투다. '1천억원 정도는 쏴야 한다'는 것이다.

고 원장은 "산업 지원 측면에서 턱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이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안되는 일이다. 일단 진흥원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할 것이다. 진흥원에서 쓸 수 있는 다른 예산 가운데 가져다 쓸 수 있는 것이라면 끌어다 쓸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가장 중요한 것은 시장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리고 기술 개발을 지원하고 전문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커뮤니티도 적극 육성할 것이다. 하나둘 차근차근 해 갈 것"이라고 말했다.

붕괴된 공개 SW 커뮤니티를 다시 세워 보겠다는 의지다.

여기서 유명무실해진 리눅스협의회에 대해 물어봤다. 몇몇 외국계 기업이 주도하고 있는데다 최근에는 별다른 활동도 없기 때문이다.

고 원장은 "어떻게든 손을 봐야 한다"며 "현 협회를 대체할 만한, 국내업체들이 주도하는 협의회 구성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장 창출을 진흥원이 주도하고 있는 만큼 진흥원이 나선다면 국산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주도하는 내실있고 힘있는 협의회 구성을 생각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고 원장은 "전자정부도 공개 소프트웨어 기반으로 가야 한다. 왜 못하나, 국가 표준으로 정해서 가면된다"고 주장했다.

공개 SW 지원 정책에 대한 그의 의지를 확인시켜 주는 말이었다.

김상범기자 ssanba@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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