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게임 규제와 심의, 새로운 잣대 필요하다


민간자율심의 등 신뢰 구축·선진화 필요

한국콘텐츠의 중심에 놓여있는 게임 산업이 수많은 논란과 이슈를 만들고 있다. 앱스토어의 출현 등 여러 가지 환경 변화로 이에 대한 새로운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게임에 대한 건전한 논의가 필요하며 규제와 심의에 대한 잣대도 변화하는 상황에 맞는 새로운 격이 필요한 시점이다.

게임 산업이 한국 콘텐츠 경쟁력을 높이고 나아가 세계적 콘텐츠로 부상하기 위해 어떤 논의가 필요하며 정부의 지원정책과 여러 가지 논의 체계는 어떻게 만들어 가야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아이뉴스24는 게임관련 최근 이슈를 정리, 문제점을 최소화하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논의를 확산시키고 위해 '게임 규제와 심의, 새로운 잣대 필요하다'는 특집을 마련했다. [편집자 주]


한국의 게임 심의 체계는 해당 산업 종사자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보수적이고 엄격한 내용 심의,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간섭에 더해 결제한도 제한을 통한 소비한도 규제를 단행하는 게임물등급위가 산업의 창의를 가로막고 있다는 '원성'이 자자하다.

반면, 등급위 측은 현행법이 규정하는 한도 내에서 소명의식을 갖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자임하고 있다. 실제, 국내외 게임시장의 변화를 감안하면 사실상 국가기관의 사전강제검열이 이뤄지는 한국의 게임심의가 아주 낙후된 것으로 보기 어려운 점도 분명 존재한다.

◆"사람 피는 붉다 배웠거늘"…심의 제도 도입시기와 달라진 현실

창작자 입장에서 심의 제도는 분명 존재 그 자체로 스트레스다. 어느 개발자는 "사람피는 붉다고 배웠고 실제로 상처 나면 붉은 피가 흐릅니다. 그런데 선혈 낭자하면 안된다고 피 색깔을 하얀 피로 하라고 하면 더 이상한 것 아닙니까"라고 반문한다.

게임 속에 등장하는 도끼나 칼이 좀 더 크고, 선명하게 묘사되면 이용등급이 한 단계 올라가는 것은 분명 달갑지 않은 일이다. 저연령대 게임이라고 성인 이용자들이 즐기지 말라는 법은 없는데, 적어도 군대 갖다 온 남자가 도끼날이 치즈로 되어 있는 치즈도끼를 휘두르며 게임 할 순 없는 노릇 아닌가.

한국에서 게임 심의제도의 태동은 99년 제정된 음반, 비디오물 및 게임물에 관한 법률(이하 음비게법)을 통해서다. 당시만 해도 미국과 일본에서 수입된 패키지 게임물이 게임 유통량의 절대치를 차지하던 때다.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수입 게임물로부터 청소년들의 정서를 보호하는 것을 명분으로 도입된 것이다.

그러나 이제 국내 시장 유통물량의 절대다수가 국산게임으로 바뀐 상황이다. 수입국이 아닌 생산 및 수출국의 관점에서, 10년 전의 정서와 또 다른 사회 인식과 정서를 바탕으로 심의 기준을 적용할 때가 되었다는 견해가 설득력을 갖는 이유다.

윤복희가 1967년, 처음으로 미니스커트를 선보이고 난 후 대중들이 받았던 '충격'은 이내 대유행으로 변했고 치마길이를 단속하던 경찰들의 단속도 "아름다움은 널리 공개해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잡으면서 사라졌다. 윤리상의 본질과 저촉하는 것이 아닌 한 대중들의 인식과 가치관은 변하는 법이니 말이다.

◆선의의 규제와 불필요한 간섭 사이의 '간극'

사람은 특정한 놀이와 즐거움에 '몰두'할 수 있다. 사람이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 대부분의(거의 모든) 즐길 거리는 시간과 돈을 투입해야 한다. 게임의 특성상 '몰입'으로 가는 길은 넓은 반면 '절제'와 '자제'로 가는 길은 좁다.

시장의 주종인 온라인게임 중 MMORPG의 경우 속성상 모험과 역경을 넘어선 '생존'과 '자아실현'이다. 캐주얼 장르의 경우 역시 '생존'과 경쟁에서의 '승리'가 목적이다. 종착역이 없어 본인이 질리지만 않으면 오래오래 즐길 수 있다.

청소년의 경우 어느 정도 절제와 통제가 필요하다. 자아가 형성되는 시기에 게임과 같은 유희 수단 외에 할 것과 배울 것이 너무나 많은 때이기 때문이다. 게임물등급위가 청소년이용가 게임에 대해 게임비의 소비한도를 책정하는 이유다.

그런데 성인용 게임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불과 얼마전까지 민증을 소지한 성인 이용자도 단일한 게임, 혹은 단일 게임사업자가 서비스하는 게임이 월 30만원을 초과하는 게임 아이템을 구입할 수 없게끔 해왔다.

사업자들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 문화부에 진정을 넣고 관련한 문제를 논의하는 TF가 가동돼 '겨우 겨우' 그 상한선을 50만원으로 올려놓았다.

이수근 게임물등급위원장은 "국민 소득수준을 고려, 레저비용으로 쓸 수 있는 비용을 고려해 지나친 소비 지출, 과몰입을 방지하기 위해 결제한도를 등급분류 기준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등급위의 '선의'는 인정할 만한 부분이 있다. 결제한도 상한선 폐지를 위해 '발벗고' 나섰던 김정호 전 게임산업협회장도 "한달에 30만원을 초과하는 돈을 게임에 쓰는 사람이 정상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인정했으니 말이다.

'바다이야기' 사태에서 볼 수 있듯 성인이라 해도 자기 통제를 하지 못하는 사람은 충분히 널려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게임물등급위가 갬블링을 게임으로 '모사(模寫)'한 인터넷 고스톱, 포커 게임이 아닌 일반 게임에 결제 한도를 정한다는 것은 문제로 지적된다. 멀쩡한 성인이 자기가 쓰고 싶은 돈을 맘대로 못 쓰게 하는 것이 가당키나 하냐는 것이다.

황승흠 게임학회 부회장은 "적어도 성인에 관한한 결제한도를 제한하는 것은 분명히 위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게이머들과 게임물에 대한 '문화주권'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 게임콘텐츠산업과 김재현 과장은 "결제한도를 50만원으로 상향 조정 시행 후 효과, 부작용 등을 분석하여 상한선을 다시 조정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견해를 표했다.

◆비즈니스 모델 제약은 적법한가?

결제한도 제한 외에도 이른바 확률형 아이템을 판매할 경우 전체 이용가 등급을 부여하지 않고, 이러한 아이템이 추가로 업데이트 될 경우 기존 연령등급에서 한 등급 상향조정하는 것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확률형 아이템'은 아이템을 구입, 개봉하기 전에 그 효능이 얼마나 될지 알 수 없는 것들이다. 운 좋으면 고성능 아이템을, 그렇지 않으면 '꽝'인 것을 고르는 '복불복(福不福)' 형 모델인 것이다.

신필수 게임산업협회 정책실장은 "등급기관은 콘텐츠 심의만 하면 되는데 왜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 이를 규제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세상에 어느 콘텐츠가 비즈니스 모델로 제약을 받는가"라고 불만을 표했다.

이 부분은 선뜻 판단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게임물등급위 전창준 정책지원팀장은 "콘텐츠와 비즈니스 모델은 떼놓고 생각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이라고 설명했다.

"부분유료화 게임에서 특정한 시기에 아이템을 사지 않으면 게임 진행이 사실상 어려운 경우, 확률형 아이템이지만 10번, 20번 뽑아도 계속 꽝만 나오게 하는 경우도 있다"는 전 팀장은 "청소년 보호의 측면에서도 소비를 동반하는 비즈니스 모델과 콘텐츠 심의를 분리할 순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화부 김재현 과장은 "등급분류는 게임물 자체의 내용을 기준으로 하는것이 원칙"이라고 전제하면서도 "현재 등급위가 등급분류 뿐 아니라 사행성 확인 등의 업무도 함께 수행하고 있어 게임물의 운영방식을 고려 요소로 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김 과장은 "이러한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선 등급분류 업무와 사행성 확인 업무의 분리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 문화부는 2010년부터 경찰청과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등 관계기관과 논의를 본격적으로 진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간자율심의 등 체계선진화 시급

북미의 ESRB, 유럽의 PEGI와 같은 민간자율심의 기구가 무조건 우월한 것으로, 한국의 사전강제검열 제도가 저열한 것으로 판단할 필요는 없다. 각국에는 그 나름의 풍토와 형편에 맞는 제도가 있기 마련이다.

PEGI 시스템이 거의 모든 국가들에 적용되는 유럽 대륙에서 독일만 '나홀로 사전강제검열'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고 해서 독일이 후진적인 국가라고 할 순 없다.

한국의 심의 제도가 '유별나' 보이는 것은 완제품 형태의 패키지 게임이 유통되는 북미, 유럽과 달리 끊임없는 업데이트 혹은 개변조가 가능하며 네트워크 접속을 통해 사람과 사람간의 무한 접촉이 가능한 온라인게임이 시장의 주종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다이야기' 사태가 터지지 않았으면 좀 더 빠른 시간 내에 심의의 민간 자율 이행이 이뤄졌을 것이다.

그러나 역시 창작과 표현의 자유, 이를 바탕으로 한 콘텐츠의 유통이라는 문화산업의 생태환경적인 측면에서 보면 국가기관이 사전강제 검열을 하는 것은 이상적인 형태의 것은 아니다.

때문에 게임물등급위가 심의를 진행하는 현행 제도도 '형식적'으로는 정부가 아닌 공공기관이 등급분류를 진행하는, '민간자율'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게임물의 패치에 한해 문화부 장관이 지정한 별도의 기구(게임물등급위가 아닌)를 통해서도 심의를 받을 수 있게 하는 게임산업진흥법 개정안은 2010년 하반기 중 그 효력이 발생할 전망이다. 이를 시작으로 한국의 심의 체계도 점진적으로 민간에 의한 자율등급 부여- 정부와 공권력, 공공기관의 사후관리로 옮아갈 전망이다.

황승흠 게임학회 부회장은 "국가의 개입은 최소화 되는 것이 이상적"이라며 "콘텐츠의 등급분류 거부는 사실상 위헌이나 마찬가지"라고 견해를 밝혔다. 등급분류 제도 자체는 유통을 제한하는 거지 막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현행 게임심의 제도가 사업주들에게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출시 전 단계에서 '목줄'을 죄는 것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정교하게 재어놓은 출시시기, 게임을 공급하고 싶은 타깃층의 구상이 등급위의 판단(적어도 사업주들에겐 불만스러운 기준에 의해)에 의해 무위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는 사업자들의 자율규제를 믿고 사후규제를 강화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는 견해가 대세를 이룬다. 창작의 자유는 물론 게임 시장의 주종인 온라인게임의 특성을 감안해도 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황승흠 부회장은 "미국의 경우 린든랩의 '세컨드라이프'를 통해 가상의 카지노를 개설했던 이용자를 FBI(연방수사국)가 수사해 개설한 이용자를 처벌한 사례가 있다"고 소개했다.

황 부회장은 "게임보다 훨씬 더 국민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먹거리도 그냥 시장에 내보내지 않느냐"며 "유통 전 단계에서는 신뢰, 문제 발생시 엄중한 제제를 가하는 것이 선진형 모델"이라고 밝혔다.

물론 이와 같은 모델로 가기 까지 현실적으로 '난제'가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현재 우리 사회의 인식이 민간자율 심의도입을 "고양이에게 생선 맡긴 격"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인식을 바꾸어 놓기 위해서도 게임업계 종사자들이 게임 제작과 운영, 서비스 과정에서 '논란'을 샀던 부분을 돌아보고 과도기 단계의 민간자율 심의 이관 과정에서 사회의 우려를 사지 않는 것이 중요할 전망이다.

과도기 동안 계속 호흡을 맞춰야 할 산업 종사자들과 게임물등급위, 시민사화 간의 신뢰 구축이 지금의 산업계가 어려움으로 인식하는 심의 체계 관련 '문제'들을 해결하는 첩경이기 때문이다.

서정근기자 antilaw@inews24.com







alert

댓글 쓰기 제목 게임 규제와 심의, 새로운 잣대 필요하다

댓글-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로딩중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