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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토' 유태오, 露영웅 빅토르최가 되다(인터뷰②)


"재독 교포 2세로서의 정체성 고민…빅토르최와 접점"

[조이뉴스24 권혜림 기자] 빅토르최는 여전히 러시아의 음악 영웅으로 추앙받는 뮤지션이다. 1962년 태어나 1990년 28세 젊은 나이에 의문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그는 체제 혼란기의 소련에서 자유와 저항을 노래한 가수이자 배우,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영화 '레토'는 조각을 배우던 청년 빅토르최가 1980년대 그룹 키노를 결성하고 첫 앨범을 발매하기까지의 모습을 담는다. 그리고 전설과 같은 이 인물을 연기한 배우는 재독 교포 2세인 배우 유태오다.

12일(이하 현지시각) 프랑스 칸에서 열리고 있는 제71회 칸국제영화제의 한국영화진흥위원회 부스에서 올해 영화제의 경쟁부문 초청작 '레토'(Leto, 감독 키릴 세레브렌니코프)의 배우 유태오와 한국 취재진의 라운드 인터뷰가 진행됐다.

'레토'는 러시아 유명 감독 키릴 세레브렌니코프의 신작이다. 러시아의 영웅으로 추앙받은 전설적 록스타이자 한국계 러시아인 빅토르최(유태오 분)가 첫 앨범을 내기까지의 이야기를 그린다. 빅토르최가 인기 뮤지션 마이크(로만 빌릭 분)와 그의 아내 나타샤(이리나 스타르셴바움 분)와의 교류를 통해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담는다.

재독 교포 2세인 유태오는 2천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빅토르최 역에 캐스팅됐다. 그간 다양한 국가에서 연기 활동을 펼쳐 온 그는 한국에서도 영화 '여배우들' '러브픽션'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등에 출연하며 연기 경력을 쌓았다.

빅토르최는 고려인 2세 아버지와 러시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인물이다. 한국과 러시아 혈통을 모두 물려받고 러시아에서 음악 활동을 했던 그의 일대기는 독일에서 태어나 미국 유학 중 연기를 처음 만나고 한국과 태국, 베트남, 러시아 등 다국에서 활동을 이어 온 유태오의 이력과 접점이 있다.

오랜 무명 생활을 보내다 큰 기대 없이 '레토'의 빅토르최 역 배우 모집 공고에 사진과 영상을 보냈던 유태오는 덜컥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오디션에 참가할 기회까지 얻게 된다.

'레토'를 연출한 러시아의 유명 감독 키릴 세레브렌니코프와의 만남에서 그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묻는 질문에 빅토르최의 곡들이 지닌 시적인 감수성에 대해 말했다. 유태오는 한국인과 우크라이나인 사이에서 태어난 빅토르최, 재독 교포 1세대 부부의 자녀로 태어난 자신의 사이에 존재하는 교집합을 떠올렸다. 그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로웠다.

"러시아에서 빅토르최는 '남성'의 상징이자, 창작의 자유, 변화의 상징 같은 이미지에요. 터프한 록커이기도 하죠. 그런데 제가 본 빅토르최의 옛날 앨범들엔 상당히 시적인 요소가 많았어요. 미술 학교를 다녔고, 화가가 되고 싶어한 시절이 있었고, (혈통에서 오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기도 했죠. 거기에 어떤 멜랑꼴리의 감수성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감독은 '네 말에 동의한다. 좋은 해석이다'라고 답했죠."

유태오는 이 이야기를 마치 빅토르최의 생애를 살펴보며 얻은 생각인듯 감독에게 말했지만, 사실 이 모든 답변에는 배우 자신의 역사와 고민 역시 들어있었다. 그는 "아마 감독도 아직 모를 것 같은데, 내가 말한 건 나의 모습이었다"며 "나 역시 어린 시절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고, 떠돌아다니는 삶에 대한 멜랑꼴리가 있었다. 내 뿌리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도 했었다"고 돌이켰다.

"교포인 동료들과 함께 있어도, 미국이나 호주 등이 아닌 유럽의 독일 교포라는 점 때문인지 함께 공유할 수 없는 감수성이 있었어요. 어떤 영화가 재밌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조차 그랬죠. 그런 공감을 나눌 사람이 별로 없어 외로웠어요. 아마 문화적 요소에서 오는 차이였을 거예요. 마치 한국어의 '싱겁다'라는 표현을 영어로는 한 단어로 말할 수 없듯이요. 저는 파독 광부와 간호사의 사이에서 태어난 완전한 노동계급 출신의 사람이고, 그 안에서 어떤 감수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미국에 갔을 땐 그런 감수성을 나눌 사람이 없었던 거죠. 제 환경이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독일어를 모국어로 구사하는 그는 영어를 잘 하지 못하는 채로 미국에 가 치열하게 언어를 익혔고, 이번엔 전혀 구사할 줄 몰랐던 러시아어로 연기까지 소화했다. 심지어 러시아어 연기를 직접 해야 한다는 것은 현장에서 급히 받은 '미션'이었다. 9곡의 노래 역시 직접 불렀다. 3주의 촬영 기간 동안 그의 생활은 오로지 대사 숙지를 위해 돌아갔다.

"오디션은 감정을 보겠다며 영어로 봤는데, 캐스팅된 후 러시아에 갔더니 러시아말로 연기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힘들 수도, 짜증날 수도 있지만 연기자로서의 제 철학은 배우는 악기라는 거예요. 감독은 지휘자죠. 저는 시키는대로 할 뿐이에요. 감독의 감수성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것이 제 역할이죠. 촬영 기간 동안은 시나리오를 신으로, 그걸 문장으로, 다시 단어로, 소리로 쪼갰어요. 내 입에 붙는 소리를 찾고, 이 소리는 안 되니 넘기고, 그런 과정이었죠. 호텔방에 대사들을 찢어 붙여놨어요. 제 마음에 감옥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 그런 환경을 만들었어요. 러시아말과 빅토르최의 노래만 들었고 그의 인터뷰와 영상 자료만 봤어요. 정말 힘들더라고요. 미쳐가는 것 같았어요."

1시간의 짧은 인터뷰 시간 동안 배우 유태오를 만난 감흥은 그저 감탄이었다. 제1 언어가 한국어가 아닌 사람임에도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단어들을 몹시 세련되게 선택했고 매 답에 위트와 센스, 정성이 느껴졌다. 오랜 무명 생활이 준 겸허함이라고 간단히 설명하기엔 그 이상의 뭔가가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최선의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 몸을 던지고, 그 과정을 즐기기까지 하려는 태도가 놀라웠다.

"현장에서는 스피치 레슨 선생님도 붙여줬어요. 여러 나라의 연기 기술을 공짜로 배울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웃음) 오전엔 레슨, 오후엔 몸 관리, 저녁엔 음악 연습을 했죠. 밤엔 배우들과 리허설을 했고요. 그렇게 3주의 시간을 보냈어요."

'레토'가 어떤 의미의 영화로 남을지 묻는 질문에는 "미래의 나를 예측할 순 없지만, 내 인생을 바꿔 준 작품으로 남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내 환경과 빅토르최의 환경이 비슷했다는 것이 운명처럼 다가온다. 앞으로도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고 밝게 답했다.

한편 올해 칸국제영화제는 오는 19일까지 열린다.

조이뉴스24 칸(프랑스)=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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