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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 따뜻한 디지털세상] "나도 인생역전에 성공할 수 있다"...대구교도소 창업설명회


 

전날 내린 비 탓인지 12일 대구는 5월의 여느 날답지 않게 쌀쌀했다. 하지만 대구교도소 교육실은 이런 날씨를 아랑곳하지 않고 수용자들의 열기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인생역전을 위한 창업설명회' 강좌 때문이다.

대구교도소와 계명대학교 벤처창업보육단과 공동으로 주최한 이 날 설명회에는 5~6월 출소를 앞둔 22명의 수용자들이 참여했다.

창업 준비와 소자본 창업아이템을 소개한 오전 강좌는 김영문 계명대학교 교수 겸 벤처창업보육단장이 맡았다. 김시완 대구광역시 동부소상공인 지원센터장이 맡은 오후 강좌는 소자본 창업 사례와 정부지원방안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 "자금 없이도 창업할 수 있습니다"

"자금은 없어도 됩니다. 자신만의 재능과 기술이 있고, 인터넷만 할 수 있다면 누구나 가능합니다."

가진 돈이 없어도 인터넷상의 오픈마켓이나 카페 등의 웹 사이트를 이용해 창업할 수 있다는 김영문 단장의 말에 반신반의 하던 수용자들의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

"창업아이템만 있으면 인터넷으로 장사를 할 수 있다고요?"

"광고비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정말 수수료만 지불하면 되나요?"

그래도 믿기지 않았던지 수용자들은 연신 질문공세를 퍼붓는다. 그들의 관심에 힘이 솟았는지 김 교수의 목소리도 점점 더 커져간다. 이어진 창업자들의 성공사례에 수용자들도 일제히 고개를 끄덕인다.

졸린 눈으로 느릿느릿 교육장으로 들어오던 수용자들은 강의가 계속될수록 언제 그랬냐는 듯 집중하기 시작했다. 스무 살을 넘나드는 나이차도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강사의 한마디 한마디를 놓치지 않으려고 몇몇은 관리요원에게 필기도구까지 빌려가며 메모에 열중했다. 한창 수업 중인 고등학교 교실에 들어온 것은 아닌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창업자금 조달 방법과 창업계획서 작성법, 정부지원제도 등 좀 더 실질적인 분야에 집중된 김 센터장의 오후 강의에서도 열기는 이어졌다. 자신들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는지 수용자들은 김 센터장에게 눈과 귀를 고정시키고 몰입했다.

◆ 수용자들의 사회 적응 위한 따뜻한 배려 절실

이번으로 일곱 번째. 교도소 사정상 한 해에 한두 번밖에 개최하지 못하기에 수용자들에겐 더없이 소중한 기회다.

지금까지 1천여 명의 수용자들이 이 강좌를 거쳐 갔다. 처음엔 교도소 측에서 100~120명의 수용자들을 강제로 동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교육 효과가 떨어진다고 판단해 지난해부턴 자발적인 신청자들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신청제로 바뀐 이후엔 보통 30~40명 정도 모인다고 한다. 이렇듯 참가자는 줄었지만 강의 분위기는 오히려 좋아졌다. 수용자들의 참여도가 더욱 높아진 까닭이다.

행사는 2003년 김 교수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계명대 벤처창업보육단장이었던 그는 혼자서 자립할 힘이 없는 교도소 수용자들에게 바깥의 창업동정을 알려줌으로써 자립의 기반을 마련하는 데 도움을 주기위해 처음 설명회를 기획했다.

수용자들이 신원 노출을 꺼리기 때문에 행사의 성과를 정확하게 파악하긴 어렵다. 하지만 김 교수는 "한 번은 창업설명회를 들었다는 사람이 인사를 해와 같이 술을 마신 적이 있다"며 행사가 수용자들의 새 출발에 힘이 될 것이라 말했다.

대구교도소 김승현 교화계장 역시 김 교수의 말에 동의했다.

"수용자들은 사회인들과 떨어져 지낸 지 오래 돼 출소 후 사회 적응이 어렵습니다. 때문에 출소가 얼마 남지 않은 수용자들에게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한 마인드를 길러주고, 바깥의 상황을 알려주는 교육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는 "청송, 안동 등의 교도소를 두루 돌아봤어도 이런 프로그램은 보지 못했다"며 "한 달에 한번씩 만기수용자 교육 프로그램이 있지만, 이 설명회는 사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가진 수용자들에게 출소 전 직접적인 도움이 되기 때문에 꼭 필요하다"고 행사의 의의를 밝혔다.

◆ "출소하면 구제청바지로 창업할 거예요"

수용자 이모(40 남)씨는 강좌가 계획됐다고 알려진 한두 달 전부터 이 날을 손꼽아 기다려 왔다. 그는 "창업에 필요한 기초적인 사항부터 차근차근 가르쳐 주셔서 많은 도움이 됐다"며 "보다 많은 수용자들에게 이 강좌가 힘이 됐으면 한다"고 강의 소감을 말했다.

"돈 없어도 인터넷을 할 줄 알고,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창업할 수 있다는 교수님의 격려가 큰 도움이 됐어요. 미처 교육을 받지 못한 수용자들에게도 기회가 돌아갔으면 좋겠어요."

그는 오늘 강좌에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출소 후 구제청바지나 액세서리 판매사업을 해볼 생각이라 했다.

다음달 5일 출소 예정인 이모(53 남)씨는 오늘 설명회에 참가한 수용자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다.

"밑천이 없어도 나가서 창업할 길이 있다는 말씀을 해주셔서 기운이 났어요. 인터넷도 잘 모르고 전에 일했던 섬유공장에서 계속 일할 생각이라 당장 창업을 하진 않겠지만, 또 다른 길에 눈을 뜬 것만으로도 좋은 경험이었어요."

이씨는 돌아가면 오늘 미처 참여하지 못한 다른 수용자들에게도 창업설명회를 적극 추천할 것이라 했다.

'인생역전'. 출소 후 새로운 삶을 설계해야 할 수용자들에게 무엇보다 절실한 한마디이다. 설명회 현장의 뜨거운 열정만큼 앞으로 이들 각자가 주인공으로 개척해갈 삶은 더욱 빛날 것이다.

박정은기자 huua@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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