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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따뜻한 디지털세상] 강원도 산촌에 IT가 선물한 것은?


 

'덜컹 덜컹'

채 녹지 않은 눈덩이가 굽이굽이 꺾인 산 길을 달리는 차바퀴에 걸린다. 삼척시에서 동서쪽으로 34㎞, 자동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강원도삼척시 노곡면 마읍 '가시오가피 마을'을 찾아가는 길이다.

상마읍, 중마읍, 하마읍리 세 마을이 묶여 지난해 행정자치부의 '정보화마을'로 조성된 가시오가피 마을. 지난해 2월 마을정보센터와 홈페이지 구축을 완료해 올해로 정보화마을 1년차가 되는 이 곳에 도착하자, 멀리 논두렁 눈썰매장이며 노인회관에 가득한 유치원 어린이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인근 동해시 청운어린이집에서 80명의 유치원생이 '체험관광' 인터넷 전단을 보고 산촌 마을 나들이에 나선 날. 논두렁 눈썰매장에선 휙휙 바람소리를 내며 하강하는 썰매 행렬이 줄을 잇는다.

"야, 빨리와!" 썰매타고 내려오기가 무섭게 다시 언덕을 오르는 아이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상민(6)이는 눈싸움 하는 재미에 손 시려운 줄 모르고 눈 뭉치느라 정신이 없다. 방금 썰매를 타고 내려온 인현(6)이와 가은(6)이도 신이 났다.

"이거(눈썰매) 타보니까 되게 재미있어요." "다 타면 내가 만든 밥 먹으러 갈 거예요."

점심에 먹을 대나무통 오곡밥을 만들어놓고 썰매타러 나온 길. 도심에서 자란 아이들이지만, 처음 만나는 산촌에서의 경험이 싫지 않은 모양이었다.

"썰매가 무섭다고 그러더니 한 번 타보니까 재미있나봐요. 소극적이던 아이들도 활발하게 놀고, 놀이동산 소풍갔을 때랑은 아이들 표정이 다른데요?"

아이들을 인솔해 온 김소미(23 ) 선생님의 말이다.

허기가 지도록 썰매를 탄 아이들이 점심 나절, 줄을 이어 마을 노인회관으로 들어선다. 체험관광 배식팀의 손길이 분주해졌다. 군불을 때 뜸 들이던 가마솥 뚜껑을 열자 뽀얗게 올라오는 김 아래로 대나무통 마다 담긴 오곡밥이 소담하다.

오전에 아이들이 직접 곡식을 담아 만든 밥. 주민들이 농사지은 무공해 곡식으로 지은 밥 맛도 그만이지만, '내가 만든 밥'이라 밥 먹는 것도 놀이같다.

오후 프로그램은 '콩나무 팬던트 만들기'. 마을 주민의 설명을 듣는 아이들 눈빛이 사뭇 진지하다.

만들기 재료는 모두 마을 주민들이 인근 육백산 일대에서 채집한 천연 재료들. 인근에 많이 나는 콩나무가 팬던트 판이 되고, 대나무 숲에서 얻은 대나무 단면이 토끼 귀가 된다. 빨간 찔레꽃 열매, 까만 콩, 솔잎과 솔방울, 도토리 껍질이 아이들 손에서 돼지 코가 되었다가 엄마 얼굴도 된다.

봉숭아 물까지 들이고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 집으로 돌아간 아이들. 이 날 순도 100% 자연 체험에 참가한 아이들은, 한 사람에 1만 원 씩의 참가비를 마을에 지급했다. 모두 80만 원.

배식팀 일곱에 총무, 체험팀장, 정보화마을 위원장까지 이리 뛰고 저리 뛴 품 값을 생각하면 많지 않은 돈이지만, 놀이공원 대신 산촌을 찾아준 것만도 고마운 일. 한 번 다녀간 손님들이 다시 찾아주고 입소문을 내준다고 생각하면 아직은 수익내기보다 서비스가 먼저다.

지난해 정보화마을 조성을 기념해 열었던 1회 가시오가피 마을 축제에 2천 500명이 다녀가는 성황을 이루자, 마을 주민들은 정보화마을 운영위원회를 중심으로 산골 체험관광 상품 개발과 온, 오프라인 홍보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마을 소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가시오가피 농사가 신통치않아지면서 농가 마다 한숨이 늘어가던 때다. 2002년 월드컵 당시 태극전사들이 가시오가피를 먹는다는 소문이 돌면서 한 때 두개 작목반에서 매일 500만원이 넘는 매출을 올려 그해는 마을 전체 가시오가피 매출은 6억원이 넘었다.

그러나 월드컵 특수가 사라지고, 유행에서 밀리며 인기가 시들해져 지난해 마을 전체의 가시오가피 소득은 3년만에 6분의 1 수준인 1억원 규모로 줄어들었다. 본전치기도 어려워진 상황이 된 것.

농가마다 주름살의 골이 깊어가던 이 때, 정보화마을 운영위원회를 중심으로 한 주민들은 산촌체험 관광을 새로운 수익원으로 삼아보자며 의기투합했다.

정보화마을이 되면서 기존 마을회관이 '마을정보센터'로 증축되고, 센터내 12대를 비롯 마을 73가구에 펜티엄4 급 컴퓨터가 들어오면서 초고속통신망이 깔렸다. 여름과 겨울 하루 4시간 씩 인터넷과 기초문서작성법을 배우면서 노인들도 '컴맹'에서 벗어나게 됐다.

주민들은 정보화 인프라와 마을 수익을 연결할 수 있는 사업 구상에 머리를 모았다. 상, 중, 하마읍 합쳐 150가구, 362명이 사는 규모있는 마을. 발벗고 뛰어줄 '40대 젊은이'들이 많다는 것도 새로운 시도를 가능케 하는 데 한 몫 했다. 이젠 체험관광으로 억 단위 수익을 올린다는 같은 삼척시 '너와마을'의 소식도 주민들을 고무시켰다.

이렇게 개발된 상품이 '강원 산촌체험 및 맨손송어잡기', '산촌마을의 넉넉한 가을나기 체험', '산촌마을 독특한 겨울나기체험' 등 세 가지. 삼척시와 가시오가피마을 홈페이지(http://sinseon.invil.org)를 통해 상품을 알리고 홍보하자, 당일 코스와 1박 2일 상품으로 구성된 체험관광에 지난 여름부터 400여 명의 관광객이 다녀갔다.

이 중 70% 이상이 가족단위 손님. 이들 대부분은 고향 정취가 그리워 찾아오는 서울, 경기 지역의 도시 주민들이다.

"성인 3만 7천 원, 청소년이 3만 5천 원에 1박 2일 동안 농가 숙박과 아침 식사, 계절별 맞춤 체험이 제공됩니다. 인기가 높았던 여름 체험관광에서는 맨 손 송어 잡기와 밀집 곤충집 만들기가 겨울 체험에서는 논두렁 눈썰매와 대나무통 오곡밥 만들기, 콩나무 팬던트 만들기가 진행되지요. 맨 손으로 송어를 잡아 끓여먹는 매운탕 맛, 밤 하늘을 수놓는 별 빛을 잊지 못해 또 오겠다고 약속하신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올 1월 신임 정보화마을 운영위원장에 선출된 이응호(53) 위원장. 그는 "진짜 시작은 올해부터"라며 "일단, 시작이 좋다"고 운을 뗐다.

"아직, 수지타산을 맞추지는 못합니다. 올해로 이월된 정보화마을 운영위 예산은 160만 원에 그칩니다. 지난해 축제에서도 식사값을 뺀 나머지 체험 이벤트는 모두 무료로 진행했지요. 그렇지만 지금은 마을을 알리고, 다녀가시는 분들의 만족도를 높여 입소문을 내는 데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지난 70년대부터 가시오가피 농사를 지어온 이 위원장은 "체험관광과 연결시켜 상품화 할 자원과 아이디어가 무궁무진하다"고 했다.

당장 올해부터는 공양왕이 피난했다던 마을 어귀 '궁전(활밭)'과 '원터'를 관광상품에 연계해 볼 생각이다. 영화 '봄날은 간다' 촬영지로 유명한 인근 대나무 숲과 진성여왕 대의 신흥사를 연결한 체험 아이디어도 구상중이다.

마을에 지천으로 피는 가시오가피 꽃과 감국화 꽃을 담은 포푸리도 상품화 해 볼 생각이다. 주민들은 누구나 베게와 차량용 방향제로 만들어 이용하고 있는 이 천연 심신안정제를 마을 온라인 홈페이지를 통해 전국 각지에 팔아보겠다는 각오다. 가시오가피를 이용한 다양한 상품도 구색을 갖춰 온라인 판매와 현지 판매에 박차를 가할 참이다.

"올 한 해, 성공사례를 만들어가는 데 주력할 겁니다. 아직 미숙하고 어설픈 것도 잘 압니다. 하지만, 우리보다 규모도 작고 사람 수도 적은 너와마을도 해내지 않았습니까? 희망을 현실로 만드는 일, 한 번 해볼겁니다."

'부농'을 꿈꾸는 산촌 정보화마을은 그렇게 다부진 새 해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박연미기자 chang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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