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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 따뜻한 디지털세상] '58년 vs 94년' 개띠 부자의 디지털 일기


 

민석(13)이가 갑자기 닭똥 같은 눈물을 떨구기 시작했다. '게임'과 자신을 몰라도 너무 몰라주는 아버지가 서운했던 탓이다.

"아빠랑, 같이 게임하면 좋겠다"며 종일 아버지 퇴근을 기다렸던 민석이. 그러나 퇴근해 돌아온 아버지 강왕귀(49, KT 사업협력실 부장 남북협력 담당)씨가 민석이에게 제일 먼저 한 말은, "너 게임 좀 그만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시간 좀 줄여라"였다.

'디지털'로 아버지와 자신 사이를 지나고 있는 36년 세대 차의 벽을 넘어보려던 민석이다. 그러나 '게임' 하면 일단 게임중독 같은 부작용부터 떠오르는 58년 개띠 아빠 앞에서 94년 개띠 아들의 '디지털'은 물과 기름처럼 겉도는 모습이었다.

지난해 7월, 정보통신부가 제출한 국감자료에 의하면 서울지역 가구당 PC보급률은 87.3%. 인터넷 이용률도 70%를 넘어섰다. 서울지역 10가구 중 8가구 이상이 PC를 보유하고 있으며, 7가구 이상은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기업의 정보화는 이미 두말할 나위 없는 수준. 정보통신부 '2004 정보화통계조사'를 참고하면, 50인 이상 사업체의 경우 99.5%의 PC보급률과 98.9%의 인터넷 이용률을 보이고 있다.

소수 정보소외계층을 제외하면, 사실상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과 회사에서 '디지털 라이프'를 살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같은 PC를 쓰고, 같은 초고속 망을 이용하면서도 세대마다 디지털 세상을 사는 모습은 모두 제각각이다. 13살 민석이와 49살 강왕귀 씨의 사례에서 보듯, '접속'과 '소통'의 촉매인 '디지털'이 때로는 세대차를 더 명확하게 가르는 '단절'의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2006년, 내로라하는 IT강국에 사는 개띠부자는 각각 어떤 디지털 라이프를 살고 있을까? 이들이 생각하는 디지털이란 무엇이며, 어떤 의미를 주는 것일까.

지금부터 개띠 해를 맞는 94년 개띠 아들 강민석 군과 58년 개띠 아빠 강왕귀 씨의 어느 'e-하루'를 따라가보자.

개띠 부자의 어느 평범한 하루는 이랬다. 굳이 '디지털'로 간추려보지 않아도 이들의 일상 곳곳에 디지털이 공기처럼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의 삶에 '디지털'이 주는 의미는 퍽 다른 듯했다. 일상 전반이 디지털과 연결돼있지만, 하루 중 한 때도 이들의 디지털 라이프에서 이렇다 할 공통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디지털이 연상시키는 것들을 생각나는대로 답해달라는 질문에 개띠 부자는 각각 아래와 같은 답변을 들려줬다.

◆ "디지털,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 94년생 민석이 : "게임, 아빠, 친구들, 컴퓨터 수리기사, 숙제"

- 58년생 강왕귀 씨 : "증권, 인터넷 쇼핑몰, 인터넷 신문, 영어학습(e-러닝), e-메일"

'디지털은 놀잇감이자 소통수단이며 생활 그 자체' VS '디지털은 업무와 일상 편의를 돕는 보조도구'

개띠 부자가 '디지털'을 주제로 떠올린 대상을 종합한 결과, 교집합은 발견되지 않았다.

예상대로, 13살 민석이가 '디지털' 이라는 주제어 앞에 1등으로 떠올린 것은 '게임'이었다. 그러나 두번째부터는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게임과 친구를 좋아하는 13살 민석이는 한참 게임을 즐기다가 문득 "아빠랑 같이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평소에는 활발하지만, 엄격한 아버지 앞에 가면 고개를 푹 숙이며 말이 없어지는 민석이. 그렇지만 아빠랑 편지를 주고받는 게 좋아서 최근에는 메일 계정을 하나 더 만들었다. 디지털을 재미있는 '놀잇감'으로 느끼는 동시에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일상적인 '소통수단'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에 친구를 연상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같은 시간에 같은 게임을 하면 반 친구와 채팅을 하면서 게임도 즐길 수 있다. 초등학생들이 즐겨쓰는 메신저 및 커뮤니티 서비스 버디버디에 접속하면, 친한 친구나 또래 초등학생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숙제의 절반 정도가 인터넷 검색을 통해 해결해야 하는 내용이니, 민석이에게 디지털은 학습을 위해서도 필수적인 도구인 셈이다.

놀이, 인간관계, 학습. 이처럼 13살 민석이의 일상 거의 대부분이 디지털과 관계돼있었다. 13살 초등학생에게 디지털은 이제 딱히 무엇이랄 것도 없는 하나의 생활이라는 얘기다.

컴퓨터 수리기사가 떠오른 것은, 간단한 이치. 민석이에게 수리기사 아저씨는, 전언한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컴퓨터나 인터넷이 고장날 때 그 문제를 해결해주는 '아주 중요한 사람'인 것이다.

반면 49세, '58년 개띠'인 강왕귀씨에게 디지털은 딱히 재미있는 대상은 아닌 것 같았다. 그가 떠올린 디지털은 업무나 일상생활의 편의를 돕는 보조도구였다.

강왕귀씨에게 인터넷은 증권 시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해주며, 시간이 없어도 필요한 물건을 쉽게 살 수 있는 편리한 수단이다. 신문과 영어학습, e-메일을 떠올린 것 역시 같은 이유로 분석된다. 디지털은 그에게 일일이 찾아 읽자면 불편할 신문, 학원갈 시간 없으면 배우지 못할 영어, 수 백 장으로 쌓여있을 서류 문제를 간단하게 해결해주는 문명의 이기다.

그러나 그 뿐. 강왕귀 씨의 하루를 통해 엿본 것처럼 강 씨는 중요한 대화는 얼굴을 맞대고 해야 직성이 풀리며, 꼼꼼히 읽어야 할 서류는 프린트해서 읽어야 눈에 들어온다. 정작 '중요한' 타이밍에는 미련없이 디지털과의 '결별'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이 날 저녁, 종일 아빠 오시기를 기다리던 민석이가 못내 서운함을 감추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린 이유는 이처럼, 디지털을 느끼는 세대간의 '현격한 인식차' 때문인 듯했다. 49세 아버지에겐 중요한 순간에 따돌려도 무방한 디지털이 13살 아들에겐 '생활의 또 다른 이름'이었던 것이다.

게임을 놀이이자 하나의 소통수단이며, 또래집단과의 대화 주제로 여기는 민석이에게 "게임하는 건,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일단 싫다"는 아빠의 말은 아들의 일상에 대한 부정으로 들리는 모양이었다. 게임을 하면서 무심코 "아빠랑 같이 했으면 좋겠다"던 민석이의 말은 결국 '아빠에게 나의 일상과 관심사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싶다'는 의지의 다른 표현이었다는 얘기다.

강왕귀씨는 '민석이의 눈물'을 보며 '모니터 사건의 충격'을 비로소 이해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석 달 전에 한 번, 그리고 일주일 전에 또 한번 애들이 게임하는 게 보기싫고 걱정되어서 모니터를 떼다가 숨겼습니다. 노트북은 게임을 할 때 자꾸 다운되고 한다니, 게임을 제대로 못했겠지요. 그랬더니 민석이가 엄마한테 '삶의 의욕이 없다'고 말했다는 겁니다. 충격적인 얘기였습니다. 그까짓 게임 좀 못하게 한다고 삶이 재미가 없다니요. 그런데 오늘, 민석이 눈물을 보니 그게 무슨 소리인지 이제야 좀 알 것 같습니다."

취재를 마치며, 민석이에게 물었다. "아빠가 컴퓨터나 인터넷을 연상하면 떠오른다고 했던 것 중에 관심있는 거나 이해되는 거 있었니?" 눈물이 잦아든 민석이는 생경하다는 표정으로 "아니요..."라고 대답했다. 자신의 디지털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빠가 야속했던 만큼, 아빠의 디지털에 무관심했던 스스로가 미안한 모양이었다.

전날 방을 어질렀다고 민석이를 혼내놓고 이메일로 미안함을 전한 강왕귀씨의 마음과, 예쁜 글씨체를 골라 "괜찮아요"라며 깜찍한 이모티콘까지 붙여 답장을 보내던 민석이의 마음을 읽었기 때문이다.

새 해를 맞는 지금, 당신과 당신의 소중한 사람들은 어떤 '디지털 라이프'를 살고계신지.

박연미기자 chang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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