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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더 편해요"...김고수 조명전자 중국지사장


 

김고수 조명전자 중국법인 총경리는 이제 반(半) 중국인이다. 국적은 분명 한국이지만 "지금은 한국보다 중국이 더 편하다"고 한다.

중국 사업은 스스로 선택한 길이고, 그래서 최선을 다하다 보니, 어느새 중국과 너무 가까워져 버린 것이다. 이제, 상당히 안정된 상태지만, 사실 중국에서 산 지난 7년을 되돌아보면 참으로 간난신고(艱難辛苦)의 과정이었다.

그가 중국 땅에 첫 발을 디딘 것은 지난 1996년.

그때는 조명전자가 아니라 대동전자 소속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 첫번째 시도에서 참담하게 실패하고 만다. 중국을 전혀 모른 채 칭다오(靑島)에 온 그는 4개월을 채우지 못하고 귀국하고 만다. 사업은 고사하고 단순히 먹고사는 것마저 쉽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칭다오에는 지금과 같은 '한민족 경제권역'을 상상할 수도 없었다. 누구의 도움도 받기 쉽지 않았다.

'섬'처럼 외로웠다. 4개월 동안 맨 밥에 고추장만 비벼 먹다가 급기야 위에 병까지 얻은 상태였다. 돌아서는 발길은 참혹할 정도였다. 귀국해서 두어 달 쉬며 마음을 다스리고 있을 때 다시 기회가 왔다.

박세두 조명전자 사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조명전자가 중국에 진출하려 하는데 도와줄 수 있겠냐는 부탁이었다. 김 총경리는 아픈 기억이 먼저 떠올랐지만, 다시 한 번 광활한 땅, 중국에 도전하기로 결심하고 짐을 쌌다.

조명전자는 대동전자처럼 휴대폰 등에 부착되는 로고를 만드는 기업이어서 업무 노하우가 있기 때문에 '중국 재도전'에는 안성맞춤인 회사였다.

하지만 중국이 매섭기는 여전히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이번에는 쉽게 꺾이지 않았다. 위병이 심화돼 몸무게가 20Kg이나 빠졌지만 이를 악다물고 버텼다. 그러는 사이 아는 사람도 생기고 회사도 조금씩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특히 중국 진출 초창기부터 알게 된 중국 조선족 서현씨의 도움이 컸다. 그를 통해 중국을 하나하나 배우고 회사의 기틀도 다졌다.

김 총경리는 또 칭다오에서 알게 된 한족(漢族) 관료의 소개로 그의 조카와 결혼까지 했다. 진짜 반(半) 중국인에 가까워지게 된 것이다.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되자 회사 일에도 탄력이 생겼다.

거의 매일 11시까지 야근을 했다. 한국의 기업문화를 중국인의 몸에 배도록 하는 것이 주된 작업이었다. 낮에는 이에 대한 교육을 집중적으로 시키고 밤에는 다음 날 할 일을 구상하고 설계했다. 그렇게 한국 기업의 문화를 정착시키는 데 무려 3년여가 걸렸다.

그렇게 회사의 기본 시스템이 갖추어지자, 중국 조선족 스탭이 대부분의 일을 훌륭하게 처리하고, 김 총경리도 어느 정도 여유를 갖게 되었다.

김 총경리를 비롯한 한국 주재원 4명과 조선족 스탭 15명이 한 몸처럼 뒤섞여 5년을 고생한 끝에 조명전자는 지난 2001년부터 빛을 보기 시작한다.

그 해 처음으로 연간 매출이 10억원을 돌파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70억원으로 매출이 7배 이상 급상승했다. 또 올해에도 120억원(예상) 매출이 무난할 것으로 예상된다. 계속 공장을 확장하고 인력을 충원해도 밀려드는 주문을 소화하지 못할 만큼 성장한 것이다.

이균성기자 gsle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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