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동네마트 지금 그곳에서는…

[르포]동네마트 지금 그곳에서는…

"물러설 곳이 없다"

상계6동 미도 아파트 단지 내 상가에서 2년째 '미도슈퍼'을 운영 중인 백희영씨(여 50대중반). 그는 매일 저녁 5시 중계역 근처 상가 앞에서 열리는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입점 저지 시위'에 오늘은 참가하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되도록 매일 참여하려고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같이 마트를 운영해오던 남편이 다른 일거리를 찾아 나선 후 하루 종일 혼자 마트를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자식들 키우느라 모아놓은 것 없어. 남은 것은 이 슈퍼 보증금인데, 여기 외상으로 들여놓은 물건값 제하고 나면 빈털터리야. 여기 또 털고 나가면 길거리에 나가서 일해야 된다는 건데, 그것도 요즘엔 아무나 못해. 자릿세라도 있어야 하지.."

백씨는 말끝을 흐렸다.

자영업자들이 그렇다. 보험을 들어놓은 것도 아니고, 회사원들처럼 퇴직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이들에게 남은 것은 보장되지 않은 노후일 뿐. 자식들도 취업이 잘 되고 있지 않은 상황은 백씨의 마음을 더 무겁게 한다. 혹시나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슈퍼마켓만 8년 했어. 경기도 양주에서 하다가 옆에 큰 마트가 들어서는 바람에 2번이나 자리를 옮기고 결국 밀려 밀려서 여기 상계동까지 왔지. 여기에 또 홈플러스인지 뭔지 들어선다고 하는데.. 나는 더 물러설 곳이 없어"

슈퍼마켓 인생 8년. 얼굴에 화장품 한 번 제대로 발라본 적 없고, 자식들에게 따뜻한 옷 한 벌 제대로 못 사줬다고 했다. 그나마 아이들 학비 밀리지 않고 낸 것이 그에겐 위안이다.

역시 중계동에서 8년째 '월드마트'를 운영해 오고 있는 이성노씨는 요즘 유명인사가 됐다. 요즘 SSM문제가 대두되면서 거의 매일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고, 지상파 방송에도 여러번 나왔다. 방송 출연시 그의 타이틀은 '마트 사장님'이 아닌,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입점 저지 대책 위원장'이다.

속 모르는 사람들은 "출세했네"라며 농을 던진다. 처음엔 민감하게 반응하던 그였지만 이젠 덤덤하다.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야 우리 일이 빨리 해결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젠 하도 많이 나와서 사진 찍는 건 일도 아니에요"

평범하고 말수가 적은 그가 2월 달부터 지금까지 매일 시위를 주도해오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시위 시간인 5시가 다가오자 그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시위 장소에 도착하자 주변에 작은 마트를 운영하는 '사장님' 대여섯명이 모여있는 모습이 보였다.

J마트를 운영하는 장정열 사장은 마트에서 쓰는 카트에 현수막과 피켓을 싣고 왔다. 그 외에도 베스트몰을 운영하는 박덕천 사장, 조금 거리가 떨어진 미도 6단지 아파트 상가에서 오마트를 운영하는 남철희 사장 등이 시위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날의 시위는 상가가 아닌 당현천 다리 위에서 이뤄졌다. 당현천 복원 행사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어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현수막과 피켓을 육교 위에 걸었다.

당현천 복원 행사에 참여했다가 육교 위 현수막과 피켓을 본 주민들의 반응은 덤덤했다. 한 주민은 "큰 슈퍼가 쓸데없이 왜 자꾸 들어오려고 하는지 몰라. 이 동네 슈퍼 많은데..." 하며 기자 옆을 지나쳤다.

시위는 1시간 여 가량 진행됐다. 10명이 채 안 되는 적은 인원이었지만 그들의 의지는 결연했다.

"절대 노원구에 SSM은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해야 한다"

베스트몰 박덕천 사장이 말했다.

외국자본 이야기도 나왔다. "홈플러스는 80%가 영국계 자본으로 이뤄진 회사다. 한국에서 돈 벌면 그거 거의 다 영국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우리 상권 뺏어서 왜 다른 나라 배불려주나"며 시위에 참가한 한 사람이 외쳤다.

시위를 마치면서 이성노 사장은 "돈 있는 기업들이 윗사람들한테 차 대주고 로비해서 SSM허가 받아내는 거 아니냐"며 "우리도 다 안다. 우리도 물러설 곳이 없으니 끝까지 시위할 거다"라고 성토했다.

이명박 정부는 서민들을 살리겠다고 때마다 강조했다. 그러나 지금 '작은 마트' 사장들은 먹고 살기 힘들다며 피켓을 들고 매일매일 고난한 싸움을 하고 있다. 그들에게 '대형 마트'의 존재는 생존을 위협하는 그것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부연 기자 boo@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