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고라’에서 벌어진 광고 불매 운동 때문에 확대된 포털 사이트 다음과 조·중·동의 이번 갈등의 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쉽게 예측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과거 사례 반추를 통해 짐작해보는 것은 가능하다.
이번 다음과 조·중·동의 갈등은 전통 미디어인 종이신문과 뉴미디어인 포털 사이에 벌어진 2차 대전이라 할 수 있다. 1차대전은 스포츠신문들과 포털의 대결이었다. 4년 전 이맘때다. 2004년7월 5개 스포츠신문은 네이버 다음 등 주요 포털에 뉴스 공급 중단을 선언했고, 그해 8월부터 뉴스 공급이 중단됐다.

따라서 1차대전의 배경과 결과를 이번 2차 대전과 비교해보는 것은 꽤 의미 있는 일이다. 당시와 지금은 싸움의 배경과 주체 및 구도가 많이 다르지만 신구 미디어 사이 주도권 다툼이라는 점에서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번 2차 대전에 비하면 1차 대전의 상황은 단순한 편이었다. 당시 주요 이슈는 콘텐츠 공급 가격이었다. 스포츠신문들은 포털이 지급하는 콘텐츠 가격이 지나치게 싸다고 생각했고 더 올려줄 것을 주문했지만 포털들은 스포츠신문의 요구 가격이 너무 많다고 생각했다. 서로 갈등하고 있을 때 나타난 곳이 KT가 만든 포털 사이트 파란이다. 파란은 이들 스포츠신문에 기존 가격보다 10배 올려주는 대신 독점 공급을 희망했고, 5개 스포츠신문은 이 요구를 받아들였다. 신생 포털인 파란의 공격적인 경영과 무가지 출현으로 경영이 어려워진 스포츠신문의 요구가 맞아떨어진 셈.
그런데 1차 대전의 승자는 포털 쪽이라고 봐야 한다. 신생 포털 파란은 포털의 핵심 콘텐츠를 스포츠 연예 뉴스라 판단했고 이것을 독점하면 순식간에 포털 시장의 판도를 바꿀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결과는 그렇게 나타나지 않았다. 포털들은 새로운 뉴스 콘텐츠 공급처를 발굴했고, 파란은 시장을 역전시키지 못했다. 특히 파란으로서는 스포츠신문에 지불하던 파격적인 뉴스 콘텐츠 가격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는 상황으로 몰렸다. 스포츠신문은 결국 다시 포털과 손잡아야 했다.
파란의 당시 판단과 달리 ‘공룡’에 비유되는 포털한테 일부 뉴스 콘텐츠는 중요할망정 존폐를 결정할 만큼은 아닌 것이다. 순수하게 콘텐츠로만 따진다면 이번 2차 대전의 주체인 조․중․동의 콘텐츠 또한 다르지 않다.
인터넷 조사 사이트 코리안클릭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으로 다음의 전체 페이지뷰에서 조·중·동 기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0.4%이며, 뉴스 섹션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7%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이 정도면 1차대전 당시 5개 스포츠신문보다 높다고 말하기도 참으로 난처할 만한 수준이다.
반면 오프라인 종이신문 시장에서 조·중·동의 점유율은, 다소 떨어지는 추세지만, 아직까지도 절대적이다. 한국언론재단이 발행하는 월간지 ‘신문과 방송’ 7월호 기사 ‘2008 언론수용자 의식조사’에 따르면 조·중·동 점유율은 58.1%(조선 24.4%, 중앙 19.7%, 동아 14.9%)다. 2006년 62.3%보다 조금 낮아졌다.
그런데 이 절대적인 수치가 포털에서는 보잘 것 없이 변해버린다. 물론 포털 뉴스 사이트에는 종이신문 외에 방송, 인터넷매체, 잡지 등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점유율 수치가 낮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문제는 그 정도가 심하다는 점이다. 다음에 뉴스 콘텐츠를 제공하는 공급사가 60여개인 점을 고려하면 3사가 모두 합쳐 나온 페이지뷰 점유율 1.7%는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이다.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은 아고라나 블로그뉴스 같은 개인 미디어도 포함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1.7%의 점유율이 빠진다고 해서 다음 전체가 흔들릴 이유는 거의 없다고 보는 게 상식적인 판단이다. 그렇다고 다음 뉴스 콘텐츠의 다양성이 약해질 까닭도 별로 없다. 3사 외에 보수적인 매체도 많기 때문이다. 오히려 다음으로서는 중복된 콘텐츠가 줄어 DB 비용을 절감할 기회라고 여겨질 만도 하다.
그래서 단지 이것만 따진다면 2차 대전의 결과도 뻔하다. 간단히 비유만 해봐도 금방 알 수 있다. 모두 합쳐 시장점유율이 1.7%인 중소 제조업체 3곳이 대형 할인마트에 납품을 거절한다고 하자. 대형 할인마트가 눈 하나 깜짝할 것 같은가. 모르긴 하되 “건방진…” 하면서 혀를 끌끌 차며 넘어갈 만한 일이다.
그러나 2차 대전은 1차 대전과 상황이 다르다.
1차 대전에서 스포츠신문들은 오로지 자신의 콘텐츠를 빼는 것만으로 포털과 대결을 벌였다. 그것은 순수하게 경제적 문제였다. 그러나 이번 2차 대전의 주체인 조·중·동은 기존 오프라인에서 가졌던 모든 기득권을 총동원할 태세다. 2차 대전 또한 결과적으로 경제적 요소가 중요하긴 하지만 이번 싸움의 경우 비즈니스적인 협상의 문제(윈-윈 게임)가 아니라 사활을 건 제로섬 게임과 같아 보인다.
그것은 그동안 대한민국을 쥐락펴락해온 3사가 포털을 통해 대중에 미치는 영향력이 2%도 안된다는 현실을 절감했고, 특히 ‘아고라’ 사건을 통해 광고가 급감할 수 있는 게 현실로 증명되면서 싸움의 본질이 변한 것이다.
당연히 조·중·동의 공세는 총체적일 것으로 관측된다.
3사가 취한 첫 번째 조치는 포털을 분리하는 것이었다. 다음을 집중 공략하는 것이다. 포털 업계 1위인 네이버와는 휴전 상태다. 그러고는 포털 때문에 영향력이 줄고 있다고 생각하는 다른 종이신문과의 연대를 강화해 다음에 대한 뉴스 공급 중단회사를 늘리려 할 것이다. 또 종이신문의 여론 장악능력을 최대한 발휘해 기사를 통해 포털, 특히 다음에 대한 부정적인 면을 끝없이 들추어낼 것으로 예상된다. 나아가 자신들의 영향력을 최대한 발휘해 수사기관과 정부를 압박해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일각에서 지적한 ‘인터넷 통제’에 관한 모든 조치들이 융단폭격처럼 가해질 수도 있다.
문제는 이 지점이다. 하잘 것 없는 콘텐츠를 빼는 것이야 두려울 게 아무 것도 없겠지만 조·중·동과 또 앞으로 같이 연대할 수도 있는 오프라인 기득권 세력이 총체적인 공세를 취할 때 이것을 막을 방법이 다음에는 거의 전무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촛불정국이 뜨겁게 타오르면서 상황이 간단치 않게 돌아가자 네이버가 뉴스 편집권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것 또한 이를 일찌감치 간파하였기 때문이다.
네이버가 다음에 비해 영리한 측면은 다음의 경우 주도적 미디어를 염두에 뒀던 반면 네이버는 웬만하면 정치적 당파성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끝없이 노력했다는 점이다. 다음은 한 때 자체 취재진을 둘 만큼 포털의 언론적 속성을 유지하려 한 반면 네이버는 정보 유통으로 돈 버는 기업으로 남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지난 과정에서 네이버와 다음이 이처럼 다른 길을 걸었던 것처럼 보이는 까닭은 두 회사의 정치적 입장이 달라서도 아니고, 두 회사의 비즈니스적인 수준이 달라서도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그보다는 오히려 비즈니스 상의 주 타깃이 달랐을 뿐인 것으로 보는 게 더 맞을 듯하다. 줄곧 포털 시장에서 1위를 지켜온 네이버에게는 최악의 비즈니스적 위험요소가 온갖 올드미디어의 공세였다. 그 위험을 분산시키는 게 최대 숙제였던 것이다. 실질적으로 모든 영역에서 포털에 대한 공격은 네이버에 집중됐었다.
포털 시장 2위였던 다음은 포털에 대한 온갖 공격이 네이버에 집중되기 때문에 이 위험요소를 과소 평가했을 가능성이 많다. 대신 모든 목표는 네이버를 넘어서는 데로 집중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네이버를 넘어서기 위한 방법이 개방, 참여, 공유라는 웹2.0의 가치를 더 높이 실현하는 것이었다. 네티즌한테 더 많은 활동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네이버의 약점을 넘어설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다음으로서는 불행히도 최근 촛불 정국에서 국론이 분열될 만큼 네티즌의 의견이 극단적으로 제기됐고, 그것 때문에 다음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기득권 세력의 표적이 되어버린 셈이다.
결과적으로 이 상황에서 다음이 매달릴 곳은 오로지 네티즌 뿐이라 할 수 있다. ‘아고라’를 통해 새로운 직접 민주주의를 경험케 함으로써 감동했던 수많은 네티즌. 그러나 이 또한 검찰 등으로부터 각개격파 당하고 있는 상황이고, 장기적으로 국민 즉, 네티즌의 뜻대로 되겠지만, 집중포화가 쏟아지는 단기전에서 네티즌이 얼마나 다음을 실질적으로 엄호할 수 있을 지는 쉽사리 낙관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런 상황 때문에 2차 대전의 결과가 1차 대전과 같을 것이라고 보기 힘들다. 결국에는 네이버와 비슷한 모습으로 다음도 전략적 후퇴 방침을 선택할 가능성이 적잖은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다음의 패배라고 보는 것도 무리한 판단이다. 그보다 전략적 후퇴, 즉 양보라고 판단하는 게 더 타당할 듯하다.
다음으로서는 잠시 길을 돌아가는 것일 뿐이다. 그것은 아마도 조·중·동 내부의 현명한 사람들이 더 잘 알 것이다. 조·중·동 내부의 현명한 사람들은 이번 2차 대전을 통해 총체적 물량공세를 취하면서 당장은 어느 정도 양보를 받아내겠지만 오히려 향후 입지는 더 심각하게 후퇴할 수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균성기자 gsle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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