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2일이 갖는 의미는 각별합니다. 지금으로부터 22년 전, ‘하나회’가 주동이 된 신군부 세력의 군사반란사건이 일어난 날이죠.
지난 79년의 그 날 이후 신군부 세력은 제5공화국의 핵심 세력으로 등장했습니다. 주도세력이었던 전두환, 노태우 씨는 대통령이 되기도 했구요. 12.12의 충격은 그 뒤 오랜 기간 동안 우리 사회에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았습니다.
그로부터 22년. ‘서울 2001년 겨울’의 12월 12일은 또 다른 의미로 남을 것 같습니다. 사이버 테러 방지를 기치로 내건 각종 단체가 잇달아 깃발을 올리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경찰청과 국정원, 국방부가 공동 주최하는 '한국 사이버테러 정보전 학회(회장 김귀남 경기대 교수)'가 출범하는 것을 비롯, 공공 기관 재해복구시스템 인증 및 평가를 책임지기 위해 재단법인 '한국ITC기술원'도 생겨나지요. 그 뿐 아닙니다. 전자거래의 암호 인프라를 책임지기 위한 제5의 공인인증기관 '한국전자인증(대표 신홍식)'도 출범식을 갖습니다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정교하게 계산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테러 방지를 선언한 단체들이 잇달아 12월 12일 출범한다는 것은 남다른 의미로 다가옵니다.
1979년 당시 우리 사회를 위협한 것은 ‘물리적 테러’였습니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과 함께 우리 사회도 많이 바뀌게 됐습니다. 이젠 물리적 폭력보다 정보 집중과 정보기술(IT)을 활용한 사이버 테러가 훨씬 위협적인 존재로 다가오는 것이죠. 해킹과 바이러스를 뛰어넘는 전세계 정보당국의 광범위한 사찰과 감시에 대한 심각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기도 합니다.
미국 정보 기관인 국가안보보안국(NSA)이 전세계 정보 감청망인 ‘에셜론(echelon)’을 통해 EU를 비롯한 각국의 정보 시스템 곳곳을 제집 드나들듯 활개치고 다닌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이야깁니다.
또한 영국 통신정보기관(CESG), 캐나다 통신보안국(CSE), 독일 정보기술보안국(BSI), 프랑스 정보시스템보안센터(SCSSI) 등은 사이버 전쟁에 대비해 우수한 기술력을 보유한 정보부대를 갖고 있지요.
이들은 정부 사이트 폐쇄 공격을 감행하는 것부터 각국 정상의 집무실 도청, 민간 기업 경제·무역정보 유출까지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사이버 테러 방지는 국가적인 과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국가의 자주독립과 민주주의를 지켜내려면 정보기술을 활용한 정보보호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여론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죠.
2001년 12월 12일 열리는 행사들 역시 이런 관점에서 그 의미가 더욱 크게 다가옵니다. '한국 사이버테러 정보전 학회(회장 김귀남 경기대 교수)'는 민관협력을 통해 사이버테러 관련 기술과 정보를 교류하고, '한국ITC기술원' 은 국가 재난사태 후 정보시스템 운용(백업센터 등)에 관한 실무를 담당하게 됩니다.
‘한국전자인증’은 어떨까요. 미국 베리사인 시스템으로 전자서명 인증서비스를 해왔지만, 이젠 국가의 사이버 인감도장(공인 전자서명)을 관리하는 중책을 맡게 됩니다.
물론 이들 행사에 대한 비난 여론도 있습니다. ▲ 사이버테러 학회의 필요성에 대한 의문과 학회 난립에 대한 우려 ▲ 민간기관이 국가 재해 시스템에 대한 인증과 평가를 하는 게 적합한가 하는 문제 ▲ 인증 시장이 과열된 상태에서 5번째 공인인증기관에 필요한 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죠.
이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이버 테러 대응 관련 세미나는 관심을 끌기에 충분합니다. 특히 12월 12일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생각하면 더더욱 외면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는 이날을 ‘길일’로 택해 손님을 초대한 주최 측의 의지와도 맞닿아 있는 부분입니다.
폭력과 억압까지 디지털화 되고 있는 세상에서 "제2의 12.12사태가 재연되지 않도록 우리나라 정보보호 체계를 바로 세우고, 정보시스템을 안정화하는 데 기여하겠다"는 생각이 바로 그것입니다.
/김현아기자 chaos@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