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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투더M] '담달폰' 아이폰 국내 상륙기


2007년 공개, 국내는 우여곡절 끝에 2009년 도입

[아이뉴스24 김문기기자] 아이폰의 국내 별명 중 하나는 담달폰이다. 말 그대로 출시가 지연되는 통에 얻은 오명이다. 물론 아이폰의 경우에는 억울할 수 있다.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폰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을 때는 2007년 1월 9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맥월드 2007에서다. 당시 故 스티브 잡스가 직접 첫 아이폰을 공개했다. 미국에서 2위 이통사인 AT&T와의 비밀 회동을 통해 공개 6개월만인 6월 29일 정식 판매가 시작됐다. 새로운 멀티터치 인터페이스, 모바일 운영체제 iOS와 애플리케이션 장터 앱스토어의 등장 등으로 일명 아이폰 쇼크라는 말을 만들어낼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첫 아이폰이 세상을 놀라게 했다면 2008년 7월 11일 출시된 2세대 아이폰3G는 대중화에 기여했다. 1세대는 2G 네트워크를 사용할 수 있었지만, 2세대는 3G 네트워크 사용이 가능해서 명칭에 ‘3G’가 붙었다. 이 후 속도를 더 높인 아이폰3GS가 2009년 6월 8일 공개됐다. 'S'는 '스피드(Speed)'에서 따왔다.

전 세계적으로 떠들썩했던 아이폰 쇼크는 국내까지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정확하게는 미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당시 국내는 갈라파고스에 빠지기 직전까지 몰린 상태였다. 3년 가까이 아이폰이 국내 도입되지 못한 이유다. 크게는 애플과 국내 상황 모두가 이에 해당된다.

왜 아이폰은 2년이 넘도록 국내 출시되지 않았을까. 사실 정확한 이유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여러 정황을 통해 추측만 가능할뿐이다. 물론 그 추측들이 사실과 비슷하게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기는 하다.

우선 아이폰 도입이 어려웠던 이유 중 하나로 '위피(WIPI)'를 말해야 한다. 지금은 잊혀진 존재지만 당시에서는 무선 인터넷 플랫폼으로 국내서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통합된 플랫폼을 사용하게 되면 그만큼 호환성과 효율성을 올릴 수 있다. 동일한 환경을 통해 디바이스와 콘텐츠의 끈끈한 연계를 도울 수 있다. 한마디로 보급이 편하다.

문제는 통합 플랫폼이 악용됐을때다. 통합화됐다는 말은 타 플랫폼에 대해 배타적이라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갈라파고스에 빠질 수 있다. 고집이 심하면 아집이 되는 것이나 전통이 그 가치를 상실하면 인습이 되는 것과 상통한다.

'위피'도 마찬가지다. 초기 의도는 탁월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퇴색됐다. 스마트폰 도입 전 피처폰이 중심이던 시절, 휴대폰 생태계는 이통사 중심으로 형성됐다. 해외에서는 콘텐츠에 대한 전문 퍼블리셔가 있었지만 국내서는 이통사가 퍼블리셔 역할을 대신했다. 그러다보니 진입장벽이 높았다. 콘텐츠 업체별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극대화됐다.

이들에게 있어 애플 앱스토어는 눈엣가지였다. 앱스토어는 개발자들에게 수익을 배분하는 정책을 기본으로 한다. 위피를 가진 국내 기득권층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수익구조였다. 하지만 시대 흐름에 역행할 수는 없었다. 업계에서도 위피의 폐해가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결국 당시 규제기관이던 방송통신위원회는 2009년 4월 1일부로 위피를 폐지했다. 아이폰 도입 장벽 하나가 사라진 셈이다.

또 다른 장벽은 한국의 군사적 상황과 지리적 위치였다. 위치정보법 적용 여부가 문제로 부상했다. 북한과 대치하고 있던 한국의 특성상 위치정보에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 이 장벽 제거에는 이통사가 나섰다. 이통사가 이용약관에 위치정보법 적용 여부를 포함시키기로 결정하면서, 또 다른 장벽이 사라졌다.

정책적인 상황이 마무리되기는 했지만 다음은 산업적인 측면에서 가로막혔다. 정작 아이폰을 도입하고자 나서는 곳이 없었다. 업계에서는 국내 휴대폰 시장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던 삼성전자와 이통사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다는 추측이 이어지기도 했다. 국내 휴대폰 제조업체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선전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결정적인 한방은 KT가 터트렸다. KT(당시 KTF)는 SK텔레콤에 밀려 만년 2위 자리에 머무른 상황이었다. 반전의 실마리가 필요했다.

이러한 KT의 상황은 애플에게도 매력적이었다. 애플은 유독 1위가 아닌 2위 이하 이통사를 통해 아이폰을 출시해왔다. 미국에서는 1위 버라이즌 대신 AT&T를, 일본에서도 NTT도코모가 아닌 소프트뱅크를 선택했다. 전세를 뒤집어야 하는 후발 이통사와 휴대폰 시장에서의 후발주자인 애플의 시너지 효과를 얻기 위함이었다.

다만, 앞서 언급했듯이 위치정보법 등의 여러 법적인 문제에 발목이 잡혀 당초 계획했던 일정에 출시되지 못한채 기약없이 지연됐다. 결국 시일이 흘렀지만 2009년 11월 28일 KT를 통해 ‘아이폰3GS’가 국내 첫 발을 들였다. KT는 이날 잠실실내체육관에서 대규모 행사를 진행했다.

아이폰3GS는 즉각적인 효과를 발휘했다. 짧은 시간동안 아이폰3GS는 높은 판매량을 기록하며 100만대까지 올라갔다.

한편, KT는 아이폰4도 타 이통사보다 먼저 출시했다. 애플이 2010년 6월 8일 공개한 아이폰4는 국내서는 9월 10일 출시됐다. 당시 SK텔레콤은 삼성전자와 손잡고 '옴니아'를 내놨지만 소위 ‘옴레기’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브랜드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이후 출시된 ‘갤럭시S’가 삼성전자를 대표하는 플래그십 모델로 부상한다. SK텔레콤도 KT보다는 늦었지만 2011년 3월 16일 아이폰4를 정식 도입하면서 이례적으로 한 국가에서 복수 이통사가 아이폰을 출시하는 상황을 연출했다. LG유플러스는 2014년 화면크기를 획기적으로 바꾼 아이폰6부터 경쟁에 참여했다.

김문기기자 moo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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