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1. [김홍식의 무하마드 알리 이야기] "Me, We"

    2004년 7월 휴스턴의 미니트메이드 파크에서 벌어진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에서 무하마드 알리는 시구자로 모습을 드러냈다. 구장을 가득 메운 미국 야구팬들은 알리가 그라운드에 모습을 드러내자 열광적인 환호와 박수로 알리를 환영했다. 96년 올림픽 최종 성화자로 대중 앞에 다시 선 알리는 그야말로 살아 있는 ...⋯

  2. [김홍식의 무하마드 알리이야기] 마지막 라운드

    1984년 9월. 미국인들은 충격적인 뉴스를 전해 들었다. ‘떠벌이’ 무하마드 알리가 피킨스씨 증후군에 시달린다는 소식이었다. 뇌세포에 이상이 생겨 발생하는 피킨스씨 증후군은 사람의 말투를 어눌하게 만들고 자기 몸을 자기 마음대로 가누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물론 얼굴 표정도 돌처럼 굳어 버리게 만든다. 주...⋯

  3. [김홍식의 무하마드 알리 이야기]초라한 최후

    래리 홈스는 무하마드 알리의 그림자였다. 아마추어 복서로 미국내 상위 랭커에 올라 있던 홈스는 자신의 트레이너가 알리의 트레이너 안젤로 던디와 친분이 있던 덕분에 71년 알리의 스파링파트너가 됐다. 그 후 75년 알리가 처크 웨프너와의 방어전을 마친 후 알리 캠프를 떠날 때까지 4년 동안 홈스는 알리의 그...⋯

  4. [김홍식의 무하마드 알리 이야기] 퇴물 알리

    무하마드 알리의 꿈은 챔피언으로 링을 떠나는 것이었다. 당시까지 1백년이 넘는 헤비급 복싱 역사상 세계챔피언으로 링을 떠난 선수는 단 한 명 뿐이었다. 1900년대 초반 제임스 제프리스가 무패의 챔피언으로 링을 떠났지만 복귀했다가 잭 존슨에게 무참한 패배를 당하고 은퇴했다. 37년 챔피언에 올라 48년까지 ...⋯

  5. [김홍식의 무하마드 알리 이야기]홀로 남은 알리

    무하마드 알리와 어니 셰이버스의 경기는 77년 9월 뉴욕 메디슨스퀘어가든에서 열렸다. 알리의 가장 큰 무기는 스피드다. 하지만 강적을 만날 때 알리의 무기는 입이었다. 링에 오르기 전 알리는 상대를 심리적으로 정신적으로 허물어뜨린다. 조 프레이저를 만났을 때에는 인간적인 모멸감을 주었고 조지 포먼과 싸...⋯

  6. [김홍식의 무하마드 알리이야기]날지 못하는 나비

    복서로서의 무하마드 알리는 세 시대로 구분 지을 수 있다. 첫 번째가 데뷔해서 타이틀을 박탈당할 당할 때까지. 그야말로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던 시절이었다. 두 번째는 복귀해서 조 프레이저와의 세 번째 경기인 ‘드릴라 인 마닐라’까지다. 3년의 공백기를 딛고 복귀해 스피드와 푸트워크가 예전만 못해도 엄청...⋯

  7. [김홍식의 무하마드 알리 이야기]드릴라 인 마닐라

    무하마드 알리와 조 프레이저의 세 번째 대결은 필리핀 마닐라에서 벌어졌다. 세계 챔피언이 된 알리는 조지 포먼과 경기를 할 때보다도 더 많은 600만달러를 받았고 프레이저는 그의 절반인 300만달러를 받았다. 조지 포먼과의 경기에서 자이레의 모부투 대통령이 주빈이었다면 이 경기의 주인공의 필리핀의 독재자 마...⋯

  8. [김홍식의 무하마드 알리 이야기]화해의 시대

    무참하게 패한 조지 포먼은 긴 칩거에 들어갔다. 링에서도 자취를 감추었고 대중들의 관심사에서도 멀어져 갔다. 반면 ‘럼블 인더 정글’에서 승리한 무하마드 알리는 개선장군이 돼 미국으로 돌아왔다. 모두가 그의 승리에 열광했고 그를 영웅으로 떠받들었다. 특히 당시 미국 대통령 제럴드 포드는 알리를 백악관으로...⋯

  9. [김홍식의 무하마드 알리 이야기] 두 번째 기적

    조지 포먼은 링에 기댄 무하마드 알리를 향해 무지막지한 펀치를 날렸다. 그러나 포먼은 이미 발버둥을 칠수록 더욱 빨리 가라앉는 모래 수렁에 빠져 있었다. 포먼은 알리가 쏘아대는 주먹에, 그리고 자신의 펀치가 통하지 않는다는 심리적인 좌절감에 더욱 빠른 속도로 허물어졌다. 5라운드 후반 알리는 경기를 끝내겠...⋯

  10. [김홍식의 무하마드 알리이야기] 로프 어 도프

    잔뜩 긴장한 표정의 무하마드 알리가 천천히 걸어 링 위에 올랐다. 곧이어 붉은 색 가운을 입은 조지 포먼이 링 위로 올라왔다. 붉은 색 가운을 입은 포먼은 알리와 달리 힘차게 달려 링에 올랐다. 경기는 미국 팬들의 TV 시청 시간에 맞춰 현지 시각 새벽 4시에 열렸다. 하지만 이미 경기가 벌어지는 스타디움에는 수...⋯

  11. [김홍식의 무하마드 알리이야기]럼블 인 더 정글

    무하마드 알리와 조지 포먼이 벌인 경기는 ‘럼블 인 더 정글(RUMBLE IN THE JUNGLE)’이라는 고유명사로 알려져 있다. 번역하면 ‘정글에서의 혈투’ 정도가 되겠다. 맨 처음 이 경기에 붙은 제목은 “노예선에서 챔피언까지(FROM THE SLAVE SHIP TO THE CHAMPIONSIP)’였다. 당시 혜성처럼 나타나 이 경기를 성사시킨...⋯

  12. [김홍식의 무하마드 알리이야기] "알리,보마예"

    마침내 무하마드 알리가 자이레 킨샤샤에 도착했다. 자이레의 온 국민들은 알리를 반겼다. 그들은 비록 가난하고 무지했지만 알리가 어떤 인물인줄은 알고 있었다. 세계 최대 강대국 미국 정부를 상대로 싸웠으며 미국의 흑백 인종 차별에 항의하고 미국의 베트남전에 반대한 평화의 상징이 바로 알리였다. 거기에 ...⋯

  13. [김홍식의 무하마드 알리이야기]"포먼에게는 안된다."

    경기에 대한 전망은 일방적인 조지 포먼의 우세였다. 이미 한물간 무하마드 알리가 26세의 물이 오를 대로 오른 해머펀치 포먼을 이기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드물었다. ABC 방송국의 유명한 스포츠캐스터이자 알리의 절친한 친구이기도 했던 하워드 카셀은 경기를 앞둔 인터뷰에서 애절한 목소리로 알리의 패배와 은퇴를...⋯

  14. [김홍식의 무하마드 알리이야기] 킨샤샤로 가는 길

    이제 무하마드 알리와 조 프레이저가 두 번째로 맞붙게 됐다. 알리는 알리대로 켄 노턴을 잡아 체면을 세웠고 프레이저는 지미 엘리스와 제리 쿼리 등 강한 상대들을 연거푸 제압하며 자신의 건재를 과시했다. 하지만 첫 번째 대결과 상황은 사뭇 달랐다. 71년 3월 벌어진 첫 번째 대결에서는 이 세상에서 누가 가장 강...⋯

  15. [김홍식의 무하마드 알리이야기]조지 포먼의 등장

    무하마드 알리와 조 프레이저가 기념비적인 명승부를 벌인 뒤 이 세상에 복사라고는 그들 두 명 밖에 없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만큼 그들의 승부는 인상적이었고 그만큼 그들은 다른 선수들에 비해 강했다. 하지만 장강의 뒷 물결은 늘 앞 물결을 밀어낸다. 1973년 1월22일. 자마이카의 킹스톤에서 벌어진 경기에서 ...⋯

  16. [김홍식의 무하마드 알리이야기] 알리, 대중의 챔피언

    무하마드 알리는 프로 데뷔 이후 첫 패배를 당했다. 하지만 패배의 아픔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알리는 조 프레이저와 경기를 치르기 전까지 미국 백인 주류사회의 공적 1호였다. 그는 백인들이 만들어놓은 모든 사회질서를 부정했고 그로 인해 흑인 인권 운동이라든가 블랙파워 운동, 반전 운동이 더욱 거센 파도처...⋯

  17. [김홍식의 무하마드 알리이야기]세기의 대결1

    조 프레이저는 여러모로 알리를 도와주었다. 알리를 이겨야 세상이 자신을 진정한 챔피언으로 인정해줄 것이라는 사실을 프레이저도 잘 알고 있었다. 또 그와 경기를 하면 더 많은 파이트머니가 보장된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알리는 프레이저와 자신의 경기가 관심을 모으게 하기 위해 몇 가지 각본을 짜기도 했다. ...⋯

  18. [김홍식의 무하마드 알리이야기]조 프레이저의 천하 통일

    무하마드 알리가 링에서 내려와 장외 투쟁을 벌일 무렵 그 뒤를 이어 받은 복서는 '탱크' 조 프레이저였다. 알리보다 두 살이 어린 그는 알리가 타이틀을 박탈 당하면서 두 쪽이 난 헤비급 타이틀을 토너먼트 치르듯 통합했다. 이후 알리와 프레이저는 모두 세 차례 복싱사에 길이 남을 명승부를 펼쳤다. 둘은 이 ...⋯

  19. [김홍식의 무하마드 알리이야기]컴백, 그리고 변화의 바람

    블랙파워 운동은 결국 미국 사회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월남전에 반대하던 무하마드 알리의 목소리는 이제 미국 젊은이들 전체의 목소리가 됐고 여론은 점점 미국 정부에 불리하게 돌아갔다. 알리가 결코 가능할 것 같지 않은 대결에서 승리할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알리에게 다시 복싱 선수자격...⋯

  20. [김홍식의 무하마드알리 이야기] 멕시코 올림픽과 알리

    흑인들이 미국 사회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기 쉬운 분야는 단연 스포츠다. 그리고 스포츠라면 역시 인류의 제전으로 불리는 올림픽이다. 60년대 초반 힘을 모으기 시작한 블랙파워 운동이 국제적인 관심을 모으기 시작한 건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에서 였다. 무하마드 알리가 징집을 거부하며 미국 정부와 두려움 ...⋯